위빠사나(회광반조)수행/알아차리는 것을 그만 하라고 한 이유0

24-03-22 여원 47

불교수행에서 의식을 집중하여 통찰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주관과 객관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위함이다. 네 가지 주의집중 사념처수행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데 주관인 자아의식과 객관인 자아의식에 매몰되어만 있다면 집어치워야 한다. 수행의 결과, 남는 것이 자아의식만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익숙한 곳에서 가끔 다른 장소로 여행을 하는 이유는 낯선 경험을 하기 위함이다.익숙하다는 것은 이미 생명력을 상실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저 습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자극을 주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상황을 재정비해서 본연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말로만 공을 체험한 것이 아니라면, 몇 십 년 동안 위빠사나(회광반조)만 할 것인가. 이제는 진짜 공을 체험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위빠사나(회광반조)수행은 공을 돈오하기 위한 땟목이다. 진짜 공을 체험한다면, 공성을 봤다면 분별을 하되 그것이 분별인줄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분별을 하지 않으려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거나, 생각을 하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 가끔씩 분별을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분별을 하는데 어떻게 공에 머무를 수가 있나요?

분별을 하지 않는다는 말과 공성이라는 말은 같은 말이다. 왜냐하면 연기와 공을 봤다는 것은 분별의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공에서 가끔씩 분별을 한다는 것은 웃기는 말장난이다. 분별을 하지 않아야 연기이고, 공이기에 분별을 하면서 그것이 분별인 줄 알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는 모두 옳고, 중생은 모두 틀리다는 말이 있는 이유다. 부처는 분별을 하되 분별인 줄 알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성을 봤다는 것은 자아의식이 비어있는 것이다. 자아의 수행정도를 알아차리면서, 의식이란 것에 자아의식까지 부여한다면 수행이 산으로 가는 것 아닌가. 정신과 물질이 따로 있는 것인가.

어디 물질에서 그 순수의식 따로 떼어낼 재주 있으면 떼어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