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이야기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한번씩 통찰해가며 돌아본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게 된것이고...
우선.. 마음에 대해서 이야길 해 보자면..
마음은 원래 자리가 있어서 있다는 것이 아니다 .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다.
무아..무상과 같은 의미라고 볼수있다.
무아란..나라고 할만한게 없다..라는 뜻이고..그걸 뒤집어 보면 .
나 아닌게 없다..라는 말이다.
그건..이 몸이나 ..생각.감정.기억..또한 나라고 할만한 개별적 주체로 볼수는 없지만
조건과 관계로서..연기되어 움직일땐. 그 움직이는 상태에서. ㆍ나ㆍ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생각. 감정.기억 이 일어난다는 것은 마음이 계속 움직이는 상태라..동사로서의 ...무상으로서의 나. 라고 할수 있다.
마음이 곧 나다.
그리고 마음은 무상하고. 원래 자리가 없다.
그 마음은 의식이 오식을 통해 보고 듣는 그 자리에서 생겨나고 사멸한다.
그것이 마음의 생사다.
그래서 마음은 무상하고..
마음이 생멸하는 그. 활동성이 다르마고 연기다.
그러니..마음이 곧 나고..무아고 무상이고..연기고..
또한. 없음에서 마음이 색으로 드러나고..
또한 드러난것은 마음이 떠남으로 다시 공으로 돌아가니..
그것이 색즉시공이고..공즉 시색이다.
모든 마음의 생멸은..명색이라는..업의 발생과 소멸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니..
업이. 곧..명색이고...마음 이다.
그러니. 나=마음=명색=업=무아=무상=연기=중도=공즉시색 색즉시공=동사ㆍ행ㆍ용 = 법ㆍ다르마
이런. 공식이 나온다.
이런 공식을 토대로..
위빠사나에 대한 부분은..두번 세번 여러번 반복해서 통찰해 보았는데..
그래서 그 또한 의식이 눈을 통해 허공(대상)을 바라본다..라는..
움직임을 동반한 연기의 형태로서 드러난.. 마음.업(허공이란 명색이 있어 가능한)..이라고. 봐졌다.
다만..대상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내려놓음)에서의 집중 일 경우..
마음이. 고요한..열반 상태..라 볼수 있고..
새로운 업이 발생되지 않으니..
그걸 일컬어 무기공(=색) 으로 이야기 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위빠사나에 대한것도. 승려로서 수행을 위해 화두를 들고 하는 위빠사나와 화두없이. 편안함에. 취해 사는 위빠사나는. 수행면에서 볼때 성격이 다른양상을 보이는듯 하고...
후자는 실상과는. 거리가 있기에 지나침은 피해야 할걸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눈을. 뜨고 하든 눈을 감고 하든..상관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상태이고 마음의 드러남과 사라짐을 명확히 보는 일이라면. 그 또한 수행의 움직임으로(동사) 볼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마음이란건 보는 순간 나타나고. 보지않으면 사라지고..듣는. 순간 나타나고. 듣지 않으면 사라지고....등등.
그 모든 움직임으로 드러나고 사라지는 마음이. 다 나인거고..(연기.무아.무상)
그러니.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나는 애초부터 없는거고..(다르마가 있을 뿐이고)
우린. 표시자..로서의. 나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그게 에고를 만들어 내어 전체인 나와 분리가 되어 버렸고..등등.
그걸 기본으로 해서. 지인들과의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래서...내게 일어난 신비체험도..마음..곧 명색에서 나온거고?
그마음이 조건이 되고 관계속에서 연기되어...관세음 보살이라는. 현상..곧 마음.다르마 를. 드러나게 했고..
그건.. 마음. 명색 이 곧 현상(업의 드러남)이란걸 뒷받침 하는 거고.
그 모든건. 삼위일체라..그 즉시 상즉성을. 띠고 움직이니. 그게 연기고..동사요..무상이고 무아고 공즉시색 색즉시공 이다.
같은 얘기의 반복이지만..실상에서 점검을 위해 반복은 필수다.
그래서...우린..각종 보살들의..특징이나 가피..와 관련해.. 이름을 만들어 명색으로 저장해 놓고..
마음이 위급함을 느낄때..보살들의 이름 만 불러도 법의 가피를 받을수 있는것 아닌가.
그것이 종교의. 특징 중 하나로 자리잡은거고..
그 모든게 우연 같지만 하나도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음. 명색에 없는건.. 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꿈도 마찬가지다.
마음. 명색이 조건과 관계해 현상으로 드러나는 게. 꿈 아닌가.
눈을 뜨고 연기돼 드러나든..눈을 감고 연기돼 드러나든..
명색이 색으로서 드러나는 모든게 나 아닌가.
여기서 나? 는. 모두가 연기되어 드러나는. 명색. 곧. 마음 을 이야기한다.
에고로서의 개별적 주체는 처음부터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ㆍ나 ㆍ. 는 사용될 수가 없다.
다만. 표시자 로서의..나..또는 다르마로서의 나 로 업으로서의 움직임의 대상으로서의 나..로서 보면 된다.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이 또한 내자신에 대한 점검으로서 들여다 보는 방식이다.
그래서 주체는 없지만 업은 남는다.라는 말을 한다.
마음은..몸이나 생각.감정 .기억에 있는것이 아니라. 연기됨으로 움직임이 일어날때..없던 공...에서 색으로 생겨난다.아니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공으로 사라진다.
그건 과거와 미래 라는 시간 개념으로 봤을때..그냥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보는순간 사라짐이라..
그 경계를 나눌수 없다.
그래서 공과 색은..그대로 한몸이다.
그래서 공과 색은 연기와 더불어. 불법으로 (불타는모습)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해준 것이다.
그 현상이 마음의 드러남이니..우린 드러난 색..곧세상을. 통해 마음.명색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엔.. 나 아닌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그게 무아다.
그 세상속엔..이 몸 이라는 드러남과. 생각.감정. 기억 이라는 드러남,도. 포함된다..꿈의 드러남도 포함되고..신비체험도 포함된다.
그 모두가 마음의 드러남이고..사라짐이고...고정된 자리 없음이다.
.....
또한 그 드러남에서..어떤 형상으로든...두려움이 보여졌다면...
그 두려움의. 원천인..마음.명색 을. 바로 살펴.. 두려움의. 화살을 두번 다시 맞게 하지 않는 것이 정견 이다.
그러기 위해선..두려움을 일으키는 명색을 통찰해 바로 볼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 그 습관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그 과정을. 수행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바르게 통찰하는 마음이 반야이고.
습관을 바로 잡기 위해..두려움이 일어나게 하는 그 생각.감정에. 물주어 키우지 않는 것.
예로..회향함. 이라던가..생각.감정 비우기. 호흡 명상..이라던가..채널바꾸기.(예: 얼른 좋은 상상이나..좋은 말로바꿔주는것)
좋은 기운.명색을 불러일으키는 말의 힘을 빌어 정화 하는 방법..(예: 관세음보살. 반야심경을 외운다던가.미안ㆍ용서ㆍ감사ㆍ사랑 이란 말. 성경구절 외우기. 옴마니 반메흠 등등)
또는 생각.감정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빠른. 운동이나. 일을 통해.. 생긱ㆍ 감정에 물주지 않는 ... 많은 방식이 사용된다.(예 : 절.이나 일.달리기 등)
그걸 우린 명상이라 하기도 하고..정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수행 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어쨋든 그 모든건..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라고 볼수 있다.
그것에 대해. 좋고 나쁜걸 분별하면 안된다..그냥 연기되는대로 맡겨야 한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난.마음공부가..그 정도의 공력 이 못되어서 그런지.. 여전히 좋은상태.편안한 상태. 를. 추구하는 마음 을 느낀다.
다만..이런건 있다.
현실에서..안좋은 상태에 빠져 있다 해도.. 그 또한 무상함을 알기에..연기되어 또다른 상태로의 전환이 이루어질거란것과..
안좋은 상태로 보이지만..그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내게 이롭고. 좋은 것인가...하는 것과..
내 마음에 명색이. 이렇게 드러났구나..하고..받아들이고 수용하며..감사하는 마음과..함께..
이 마음의 드러남을 알아챘으니..좀더 좋은 명색으로 바꿀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그 기회를 최대한 놓치지 않기 위해 정견과..통찰을 통해..바른 행..을. 할수 있게.. 나를 변화시켜 나가려는 노력..바로 수행 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게 마음을 내어 할수. 있는 전부라고 할수 있다.
그 나머지..결과에 대한건..법..이 알아서 할테고..난 다르마가 연기되면서 일으키는 변화를 신뢰하기에..그 나머진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더하자면.불교는 업의 소멸이 아닌.. 좋은 업을 지어..다 함께 괴로움이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보살도.
곧..대승적인 사상을 중요하게 다루는 종교라고 볼수 있다.
그래서. 좋은 업을 만들어. 그 마음이라는. 마차에..수많은 중생들을. 태우고.. 다 함께. 이세상에서 다 같이 잘사는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업을 만드는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