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변명 이랄지...5

24-03-18 모모 76

 지인들과 이야기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한번씩 통찰해가며 돌아본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게 된것이고...

우선..  마음에 대해서 이야길 해 보자면..

마음은 원래 자리가 있어서 있다는 것이 아니다 .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다.

무아..무상과 같은 의미라고 볼수있다.

무아란..나라고 할만한게 없다..라는 뜻이고..그걸 뒤집어 보면 .

나 아닌게 없다..라는 말이다.

그건..이 몸이나 ..생각.감정.기억..또한   나라고 할만한 개별적 주체로 볼수는 없지만

조건과 관계로서..연기되어 움직일땐.  그 움직이는 상태에서.  ㆍ나ㆍ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생각. 감정.기억 이 일어난다는 것은 마음이 계속 움직이는 상태라..동사로서의  ...무상으로서의  나. 라고 할수 있다.

마음이 곧 나다.

그리고 마음은 무상하고. 원래 자리가 없다.

그 마음은 의식이 오식을 통해 보고 듣는 그 자리에서 생겨나고 사멸한다.

그것이 마음의 생사다.

그래서 마음은 무상하고..

마음이 생멸하는 그. 활동성이 다르마고 연기다.

그러니..마음이 곧 나고..무아고 무상이고..연기고..

또한. 없음에서 마음이 색으로 드러나고..

또한 드러난것은 마음이 떠남으로 다시 공으로 돌아가니..

그것이 색즉시공이고..공즉 시색이다.

모든 마음의 생멸은..명색이라는..업의 발생과 소멸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니..

업이. 곧..명색이고...마음 이다.

그러니. 나=마음=명색=업=무아=무상=연기=중도=공즉시색 색즉시공=동사ㆍ행ㆍ용 = 법ㆍ다르마

이런. 공식이 나온다.

이런 공식을 토대로..

위빠사나에 대한 부분은..두번 세번 여러번 반복해서 통찰해 보았는데..

그래서 그 또한 의식이 눈을 통해 허공(대상)을 바라본다..라는..

움직임을 동반한 연기의 형태로서 드러난..  마음.업(허공이란 명색이 있어 가능한)..이라고. 봐졌다.

다만..대상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내려놓음)에서의 집중 일 경우..

마음이. 고요한..열반 상태..라 볼수 있고..

새로운 업이 발생되지 않으니..

그걸 일컬어 무기공(=색) 으로 이야기 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위빠사나에 대한것도. 승려로서 수행을 위해 화두를 들고 하는 위빠사나와  화두없이. 편안함에. 취해 사는 위빠사나는.    수행면에서 볼때 성격이 다른양상을 보이는듯 하고...

후자는  실상과는. 거리가 있기에 지나침은 피해야 할걸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눈을. 뜨고 하든 눈을 감고 하든..상관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상태이고  마음의 드러남과 사라짐을 명확히 보는 일이라면. 그 또한 수행의 움직임으로(동사)  볼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마음이란건 보는 순간 나타나고. 보지않으면 사라지고..듣는. 순간 나타나고. 듣지 않으면 사라지고....등등.

그 모든 움직임으로 드러나고 사라지는 마음이. 다 나인거고..(연기.무아.무상)

그러니.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나는 애초부터 없는거고..(다르마가 있을 뿐이고)

우린. 표시자..로서의. 나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그게 에고를 만들어 내어 전체인 나와 분리가 되어 버렸고..등등.

그걸 기본으로 해서. 지인들과의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래서...내게 일어난 신비체험도..마음..곧 명색에서 나온거고?

그마음이 조건이 되고 관계속에서 연기되어...관세음 보살이라는. 현상..곧 마음.다르마 를.  드러나게 했고..

그건.. 마음. 명색 이 곧 현상(업의 드러남)이란걸 뒷받침 하는 거고. 

그 모든건. 삼위일체라..그 즉시 상즉성을. 띠고 움직이니.  그게 연기고..동사요..무상이고 무아고 공즉시색 색즉시공 이다.

같은 얘기의 반복이지만..실상에서 점검을 위해 반복은 필수다.

그래서...우린..각종 보살들의..특징이나 가피..와 관련해..  이름을 만들어 명색으로 저장해 놓고..

마음이 위급함을 느낄때..보살들의 이름 만 불러도 법의 가피를 받을수 있는것 아닌가.

그것이 종교의. 특징 중 하나로 자리잡은거고..

그 모든게 우연 같지만 하나도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음. 명색에 없는건.. 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꿈도 마찬가지다.

마음. 명색이  조건과 관계해 현상으로 드러나는 게. 꿈 아닌가.

눈을 뜨고 연기돼 드러나든..눈을 감고 연기돼 드러나든..

명색이  색으로서 드러나는 모든게 나 아닌가.

여기서 나? 는. 모두가 연기되어 드러나는. 명색. 곧. 마음 을 이야기한다.

에고로서의 개별적 주체는 처음부터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ㆍ나 ㆍ. 는 사용될 수가 없다.

다만. 표시자 로서의..나..또는 다르마로서의 나 로 업으로서의 움직임의 대상으로서의 나..로서 보면 된다.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이 또한 내자신에 대한 점검으로서 들여다 보는 방식이다.

그래서  주체는 없지만 업은 남는다.라는 말을 한다.

마음은..몸이나 생각.감정 .기억에 있는것이 아니라.   연기됨으로 움직임이 일어날때..없던 공...에서 색으로 생겨난다.아니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공으로 사라진다.

그건 과거와 미래 라는 시간 개념으로 봤을때..그냥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보는순간 사라짐이라..

그 경계를 나눌수 없다.

그래서 공과 색은..그대로 한몸이다.

그래서 공과 색은 연기와 더불어. 불법으로 (불타는모습)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해준 것이다.

그 현상이 마음의 드러남이니..우린 드러난 색..곧세상을. 통해 마음.명색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엔.. 나 아닌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그게 무아다.

그 세상속엔..이 몸 이라는 드러남과. 생각.감정. 기억 이라는  드러남,도. 포함된다..꿈의 드러남도 포함되고..신비체험도 포함된다.

그 모두가  마음의 드러남이고..사라짐이고...고정된 자리 없음이다.

.....

또한 그 드러남에서..어떤 형상으로든...두려움이 보여졌다면...

그 두려움의. 원천인..마음.명색 을. 바로 살펴..   두려움의. 화살을 두번 다시 맞게 하지 않는 것이 정견 이다.

그러기 위해선..두려움을 일으키는 명색을 통찰해 바로 볼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 그 습관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그 과정을. 수행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바르게 통찰하는 마음이 반야이고.

습관을 바로 잡기 위해..두려움이 일어나게 하는 그 생각.감정에. 물주어 키우지 않는 것.

예로..회향함. 이라던가..생각.감정 비우기. 호흡 명상..이라던가..채널바꾸기.(예: 얼른 좋은 상상이나..좋은 말로바꿔주는것)

좋은 기운.명색을 불러일으키는 말의 힘을 빌어  정화 하는 방법..(예: 관세음보살. 반야심경을 외운다던가.미안ㆍ용서ㆍ감사ㆍ사랑 이란 말. 성경구절 외우기. 옴마니 반메흠 등등)

또는 생각.감정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빠른. 운동이나. 일을 통해.. 생긱ㆍ 감정에 물주지 않는 ...   많은 방식이 사용된다.(예 : 절.이나 일.달리기 등)

그걸 우린 명상이라 하기도 하고..정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수행 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어쨋든 그 모든건..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라고 볼수 있다.

그것에 대해.  좋고 나쁜걸 분별하면 안된다..그냥 연기되는대로 맡겨야 한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난.마음공부가..그 정도의 공력 이 못되어서 그런지.. 여전히 좋은상태.편안한 상태. 를. 추구하는 마음 을 느낀다.

다만..이런건 있다.

현실에서..안좋은 상태에 빠져 있다 해도.. 그 또한 무상함을 알기에..연기되어 또다른 상태로의 전환이 이루어질거란것과..

안좋은 상태로 보이지만..그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내게 이롭고. 좋은 것인가...하는 것과..

내 마음에 명색이. 이렇게 드러났구나..하고..받아들이고 수용하며..감사하는 마음과..함께..

이 마음의 드러남을 알아챘으니..좀더 좋은 명색으로 바꿀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그 기회를 최대한 놓치지 않기 위해 정견과..통찰을 통해..바른  행..을. 할수 있게..  나를 변화시켜 나가려는 노력..바로 수행 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게  마음을 내어 할수. 있는 전부라고 할수 있다.

그 나머지..결과에 대한건..법..이 알아서 할테고..난 다르마가 연기되면서 일으키는 변화를 신뢰하기에..그 나머진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더하자면.불교는 업의 소멸이 아닌..  좋은 업을 지어..다 함께 괴로움이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보살도.

곧..대승적인 사상을 중요하게 다루는 종교라고 볼수 있다.

그래서. 좋은 업을 만들어. 그 마음이라는. 마차에..수많은 중생들을. 태우고.. 다 함께. 이세상에서 다 같이 잘사는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업을 만드는건. 중요하다

  • 24-03-20 원정
    이론적인 설명은 충분한 것 같아요.
    모모님의 재치있는 설명이 돋보이는 부분도 있구요.
    다만, 초기불교와 선불교의 설명방식이 조금 다른 것도 같아요.
    양쪽을 다 모르면 오해할 수도 있구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전 제가 느끼는 것을 솔직히 설명할 수 없어요.
    이거에 대해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는 '무아'도 '연기'도 '중도'도 '공'도 없거든요.
    그런 말들은 분별할 때 존재할 수 있는데, 그 자리는 분별이 없거든요.
    판단중지 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오직 모를뿐'으로 느껴집니다.

  • 24-03-20 모모
    전 그자리를..마음의 눈.
    태풍의 눈...쯤으로 부르지요.
    날씨 뉴스에서 보이는 태풍의 눈.. 모습과 정말 닮지 않았나 싶어서요.
    그리고 누구는..
    그 눈을..모든것을 비치는. 거울.
    곧ㆍ 경ㆍ이라 부르잖아요.
    밖으로도 안으로도 오직 비추어내는 작용..
    그. 거울을 끄집어내어 법으로 펼쳐 놓은걸.. ㆍ경전ㆍ이라 부르는 거구요.

    태풍의 눈안에 있으면..어떤 이론도 말도 필요 없지요.
    ....
    제가 그 자리를.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걸로 보이나요?

    전 그 자리를 너무 잘압니다.
    그 느낌도요.

    그런데..지금은..그 자리. 아닌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모두가.. 다 마음이고 다 나 라고 보아지니..
    굳이 그 의식의 눈 안에. 있든 없든..
    .의식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어차피 그것에서 떠날 방법은 없으니)

    그 자리가 그렇구나..할 뿐이지요.
    그 자리 라는것도..꼭. 있어서 있다..라고 하는게 아니니까요.

    이중표 교수님 의 강의대로 라면..
    보니까 드러나는 것..이라 할수 있겠구요.
    그래서 그냥 연기된다.. 라고 표현해 말하는 거구요.

    ...
    사실 정리 해 나가면 나갈수록. 침묵이 얼마나 향기로운 가 를. 다시금 느낍니다.
    저역시 결국 그런 방향으로 가겠구나..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건 어쩔수 없네요.
    알면 알수록..모두가 나로 보여지고 느껴지니..
    내가 나에게 말하고..듣고 .등등.. 반복. 반복.....

    그러니 준자도 받은자도 없고..
    말한자도 들은자도 없고.
    ...
    ....
    그렇게 흘러가나 봅니다.^^
    이런 산도..이런 바다도..
    이런방식. 저런방식으로도..
    가보고 경험하고..하다보면 좀더 자유자재하게 법과 하나되어 다같이 즐기는 ..

    뭐.. 아니어도 상관없구요.^^
  • 24-03-20 원정
    제가 아무것도 잡지 않을 수록 더 각성이 이루어지고, 깨어있을 때는 항상 이 상태임을 보면(그 농도는 다르지만), 이 상태는 무척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알 수 있어요.
    의식의 본래상태임을 알 수 있어요.
    어린 아이들이 이럴 것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앎 또는 생명만이 있어요.
    정말로 진공묘유이고, 공적영지예요.
    저의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의 패턴이 보이니까 그 업습이 녹여질 것도 같아요.

    그렇지만 한참 공부를 해가는 과정이에요.
    물론 제가(에고가) 공부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절로 알아차려지고 저절로 제 업습이 보이고 저절로 제 감옥에 있던 감정들이 풀려나는 듯 싶어요.
    오로지 저는 이 자리에 그냥 있을 뿐이에요.
    이렇게 공부를 해 나가고 있어요.
    참고로,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의 패턴들이 저절로 보이지 아니하면 그 업습이 녹아질 가능성이 적지요.
    인위적으로 알아차려지기도 쉽지 않지만 인위적인 방법을 쓰면 에고는 더 강화되지요.
    그렇지만 저는 공부를 해가는 과정에 있음은 명백해요.
    좀 더 확신이 들 때까지 조심해서 말하고 싶어요.
    제가 느끼기에 깨달았다고 생각되는 분들의 법문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 법문이 제가 충분히 소화가 되고 어느 정도 확신이 들 때 정리해서 올려요.
    100% 순수한 제 이야기는 조심하고 있어요.

    제가 모모님을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눈은 없어요.
    다만, 전 모모님은 여러 체험과정에서 이 자리를 알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은 해봐요.
    이 자리를 체험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원래 우리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잡지 않으면 저절로 드러나는 상태(?)이기에...
    그래서 저로서는 일단 모모님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어요.

    여원님의 글 중 "공으로 돌린다"는 취지의 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글은 공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사람의 글이거든요.
    이건 생생히 체험되는 것인데.....
    또한 제 글의 취지를 여원님의 안목의 정도에서 해석하는 면이 있어서 제 글의 본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의 폭과 여원님이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의 폭이 다른 경우도 많다고 생각했어요. 저로서는 전체적인 문맥을 보면 이해가 갈텐데 여원님이 부분적으로 글을 쪼개어 해석하는 과정에서 제 말의 의미를 놓친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래서 여원님의 제 글에 대한 반박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에요.

    저는 제가 제 에고에게 속을까 조심하고 있어요.
    우리는 각자 그렇게 공부를 해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로서는 모모님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지인과의 대화'에서 처럼 모모님의 지혜를 배우고도 있어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 24-03-20 모모
    전 그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렀지만..그것이 뭔지는 어차피 몰랐어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쉬는 자리 정도로만 활용한듯 싶네요.

    원정님이 말씀하고 싶은 요지는 알거 같아요.

    제경우는 아직은 좀더 여기저기. 여행 하고 싶다...할까요.^^

    여행이란 말이 나오니까..갑자기 웃음이 나오네요.
    아. 이것 또한. 여행이었네..
    그런 생각이 확 지나가서리...^^

    울 언니랑 동생은 해외든 국내든 여행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그래도 가끔..아주 가끔씩은 기분전환 삼아 다녀오곤 하죠.

    갑자기..언니랑 동생이. 엄청 이해돼는 느낌을 받았네요.^^

    제가 그여행을 이런식으로 즐기고 있구나 싶은게..

    뭔 말인지 알겠죠. ^^

    다들 그렇게. 할만큼 하고 나면. 떠다 밀어도..멈춰지는 날이 있겠다.. 싶네요.^^

  • 24-03-22 모모
    저 드디어.
    머릿속에서 이론적 정리가 끝난듯 싶습니다.^^
    원정님이랑 여원님덕에..정말..공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아주 속이..시훤 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