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이 어려운 이유
최근의 양자과학이나 인지과학 이전의 과학은 나라는 주관이 나를 둘러 싼 것들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나라는 관찰자가 엄연하게 존재하고, 나를 둘러 싼 것들도 반드시 존재하는 전제가 있었다.
그 주관인 관찰자인 나와 관찰대상인 나이외의 객관적인 사물들이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견고하게 우리를 지배해 절대로 놓아버릴 수 없게 만드는지 모른다.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시공간 존재의 절대성을 상대적으로 만들어 버린 아인슈타인조차 관찰자인 자신과 관찰대상인 외부대상들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죽을 때까지도. 결국 고정관념따로 자신의 이론따로인 셈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연기법공부는 아인슈타인처럼 죽을 때까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반면 그것이 분리가 성공하는 순간 한 방에 연기법은 실마리가 풀린다.
토끼 열두 마리가 소풍을 간 동화를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리더 토끼가 자기를 빼고 토끼 마리 수를 세어 계속해서 한 마리가 부족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우리의 연기법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나만 셀프로 빼놓고, 세상에 대해서만 연기법을 적용시킨다. 나만 셀프로 빼놓고, 나의 상태를 공의 상태로 만든다. 나만 셀프로 빼놓고, 세상 모든 길을 중도로 한다. 이 나만 셀프로 빼놓기 때문에 연기법은 완성되지 않고, 계속 옆길로 빠지는 것이다. 실상의 법은 셀프라는 특정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고, 하나하나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어떤 것도 셀프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연기법을 공부하려면 나를 바다 속 물고기가 되게 하라. 바다 속 물고기는 바다 밖으로 나오면 바로 죽어 버린다. 나라는 셀프를 아웃시키고, 연기의 바다로 들어가라. 소금처럼 녹아 하나가 되라. 그때 연기법은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