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님께 질문 있습니다.26

22-05-11 여원 59

원정님께 질문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 순간 ‘연기’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삼라만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나라는 것이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증발해 버린 것이죠. 이전에는 삼라만상 따로 있고, 나 따로 있었는데 그 둘이 합체되어 한 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원정님의 에고나 생각이 자살해 버렸지만 여전히 깨달은 나가 있는 게 아닌 ‘삼라만상’과 나는 완벽히 하나 되는 체험이었죠.)

 

그런 깨달음이 희미해질 때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독립된 개체라는 습기가 워낙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그것의 착각을 걷어냅니다.

‘넌 독립체가 아니야, 착각하지 마’하면서 말입니다.

나라는 개체로 존재할 때와 더불어 한 몸인 상태에서의 생활에 변화가 있다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든든함입니다. 그저 턱하니 믿고 맡기는 마음이지요.

내가 없으면 지도 없는데 어떻게든 동고동락하겠지 합니다.

‘연기’를 깨닫고 부터는 그렇게 외롭지가 않았습니다. 나혼자가 아닌데 외로울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나를 찾아서 방황하지도 않습니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삼라만상과 하나일 테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원정님의 글이나 말을 통해서 매번 느꼈던 것인데, 원정님께서는 원정님께서 말씀하시는 ‘이것’과 ‘원정님’이 각각입니까? 예를 들면 ‘이것’은 원정님의 깨달음내지는 그 자리이고, ‘원정님’은 그 자리에 들어맞는 그런 존재입니까?

어떤 깨달음(이것,그것,그자리,참나...:원정님에게 항상 드러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을 알고 있는 원정님이 따로 있습니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 22-05-11 여원
    '깨달음'이 있고,

    '깨달은 자(원정님)'가
    따로따로
    있습니까?
  • 22-05-11 여원
    깨달음에 대해서 말을 하면
    원정님께서는
    깨달은 자에 대해서
    지적하는데 대해 매번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자의 상태가 어쩌고저쩌고 할 때도
    그랬죠.

    깨달은 자는 깨닫는 순간 없다고 보거든요.
  • 22-05-11 여원
    계속
    원정님과
    제가
    뭔가 겉도는 지점이
    이것인 듯 해서 확인하고자 합니다.
  • 22-05-11 여원
    내가 공이고
    내가 연기이고
    내가 중도이고
    내가 무아이고
    내가 본성이면
    그것의 공에 무슨 이름을
    붙일 수 있겠습니까?
    그와 나는 완벽히 하나인데요.
  • 22-05-11 원정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깨어나고, 그리고 나서 이후에 또 깨닫는다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아마도 난 초견성을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나도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요.
    나도 사실은 내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요.
    그 변화를 계속하여 남겨볼 작성입니다.
    그렇치만 확실히 느끼는 부분이 있지요.

    이런 거예요.
    대화를 하다가 '깨어남'란 과일을 말하게 되었는데,
    상대방이 그 과일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설명을 합니다.
    모양은 굽은 오이 같고, 색갈은 노란색이다.
    모양은 초승달 같기도 하다.
    껍질이 있는데(오이처럼 오돌토돌 하지는 않다), 껍질을 벗기고 내용물만 먹는다.
    내용물은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이 있다.
    열대지방에서 나는데, 제주도에서 많이 나고, 요즘에는 남해안이나 육지의 비닐하우스 속에서도 자란다.
    예전에는 귀했으나 요즘은 흔이 있는 과일이다.
    등등....
    어느 날 과일가게를 갔다가 그 비슷한 과일을 먹게 되었어요.
    먹어보니 그 설명과 같았어요.
    그 순간 저절로 알게 되요.
    "아! 이게 깨어남이란 과일이구나"

    사실은 제가 '바나나'를 생각하면서 '깨어남'이라고 이름을 바꿔 적었어요.
    그게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아서요.

    경전을 일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체험을 했는데, 경전 이야기가 그대로 이해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나는 궁금하다'글을 보면 제가 어떻게 체험하고 경험하고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다른 분들도 그런 비슷한 변화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주시자(관찰자, 나라고 생각하는 느낌의 부분)를 화두 삼아 주시자로 존재하면서 하천을 걸어가는데 주시자 주변에서 뭔가가 드러나더군요.
    나중에 보니 주시자(관찰자, 나라고 생각하는 느낌의 부분)는 생각덩어리였고, 그 드러난 부분이 참나라고 느껴지는 부분이었어요.
    그 부분이 점점 커지고 깊어지더니 어느 순간 존재감으로 가득찼고, 지금은 몸을 포함하여 허공이 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어요.
    그 자리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자리에요.
    솔직히 아직은 저도 잘 몰라요.
    끝까지 잘 모를 수도 있어요.
    그저 지켜보고 있어요.
    분명히 마음공부가 되고 있어요.
    그러나 싯다르타나 예수나 모든 각자들이 그 자리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확신이 들어요.

    저도 제가 잘못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확인하기 위하여 이 곳 저 곳 둘러보는 것입니다.
    보면 저절로 알아요.

    아마도 지금의 저는 공을 도구삼아 마음공부 하고 있는 듯 싶습니다.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이 멀어요.
  • 22-05-11 원정
    저는 깨달은 자(개인)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완전히 참나에 계합되면(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그런 느낌이 있겠어요?
    이미 전체로 존재하는데...
    그래서 제가 깨어남이라고 표현해 보는 거에요.

    진정으로 계합되면,
    깨달았다는 내가 있을 수 없지요.
    그리고 무얼 깨닫겠어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이미 깨달아 있는 것을요.
    본인이 분별심으로 그 것을 가리고 있을 뿐인데.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저도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어느 정도는 확신이 있고,
    몇몇분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쓰는 것입니다.
  • 22-05-11 여원

    원정님의 깨달음은 나무랄 데가 없었어요.
    표현하는 방식이 다 다르니까요.
    다만,

    원정님의 '깨달은 자'를 소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 22-05-11 여원
    깨달음에서 '깨달은 자'가 증발해 버리기를 바랬습니다.ㅜㅜ
    한참을 돌아 직접 여쭤봤습니다.
  • 22-05-11 원정
    이 번의 댓글은 매우 반가웠습니다.
    여원님이 이런 질문을 해주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2-05-11 원정
    여원님이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깨달은 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깨달음 보다는 분별심에서 한 번 깨어나본자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깨달음이라는 표현도 너무 추상적이고요.
  • 22-05-11 원정
    "내가 공이고
    내가 연기이고
    내가 중도이고
    내가 무아이고
    내가 본성이면
    그것의 공에 무슨 이름을
    붙일 수 있겠습니까?
    그와 나는 완벽히 하나인데요."
    이 것은 이해를 통한 여원님의 생각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내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생각으로는 이렇게 완벽히 하나인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석가모니 조차도......
    그러나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니 모르겠습니다.
  • 22-05-11 여원
    그 질문 속에는
    석가모니와
    원정님이 있어요.

    공과 하나 되지 않은 개체.

    불성이 있다는 것은
    다 부처라는 겁니다.
    1분 부처
    24시간 부처
    10시간 부처
    의 차이일 뿐이죠.

    중생성이 잠시 잠잘 때는
    그도 모르게 불성이 발현될 때도 있어요.
    자리만 비켜주면 언제든지
    빛을 발하지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이 편재되어
    삼라만상을 떠받들고 있어요.

    각각의 개체들이
    미쳤다고 삼라만상의 무게를 견디겠어요?
    무슨 이득이 있다고요.

    그들은 깨달은 겁니다.
    이미 모두 하나라는 것을요.
    도망갈 데가 없어요.
    너를 살려야 내가 산다는 것을
    철저하게 아는 거죠.

    원정님은 없어요.
    석가모니도 없어요.
    다만 있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 22-05-11 여원
    원정님의 그 개체의식이 늘 방해꾼입니다.
    삼라만상의 이치를 다 꿰뜷었는데, 도무지 나라는 것을 없앨 수가 없는 겁니다.
    아상을 없애도
    분별을 없애도
    원정님이 있는 상태에서 없애고자 하는 것이죠.
    원정님이 없다면
    굳이 분별을 없앨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
    연기를 깨닫는 순간
    나라는 개체를 소멸시켜야 되는 것 아닌가요?
    연기망 속에서 나만 떨어져 홀로 존재할 수 있나요?
    아니잖아요.
  • 22-05-11 원정
    제가 일면식은 없지만, 동영상을 보면 무심선원의 선원장님은 정말로 많이 가신 분입니다.
    여원님이 이 분에 대하여 폄하하시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여원님의 눈에는 아직 그 분의 경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여원님의 글
    "원정님의 '깨달은 자'를 소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부분을 보면,
    여원님은 여원님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 22-05-11 여원
    지금까지의 내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생각으로는 이렇게 완벽히 하나인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석가모니 조차도......
    그러나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니 모르겠습니다.
    ----------------------------------------------------------------
    언젠가 제가 '그렇게 나를 없애는 것이 어려운가'라고 원정님께 말했던 것이 기억나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원정님께서 진정으로 '연기'를 깨달았다면 철저하게 연기라는 그물상 속의 일원이 되어 버리세요.
    그리하면 즉시로 나는 소멸됩니다.
    작은 나인 에고와 분별은 나를 따라 같이 소멸되니 얼마나 좋아요.
    선정을 하지 않아도 내가 소멸되면
    그놈들이 어디에 붙어 살겠어요.
  • 22-05-11 여원
    그래서 진짜지폐(연기)를 깨달아버리면 되지,
    굳이 위조지폐들(에고,분별,번뇌)은 신경쓰지 말아라고 한 겁니다.
  • 22-05-11 여원
    "내가 공이고
    내가 연기이고
    내가 중도이고
    내가 무아이고
    내가 본성이면
    그것의 공에 무슨 이름을
    붙일 수 있겠습니까?
    그와 나는 완벽히 하나인데요."
    이 것은 이해를 통한 여원님의 생각으로 보입니다.
    -----------------------------------------------------------
    원정님께 질문합니다.
    원정님,
    내가 태어나고
    내가 존재하고
    내가 소멸하는 것이
    공이고
    연기이고
    무아이고
    중도의 법 아닌가요?

    그것들과 내가 한몸 아닌가요?
  • 22-05-11 여원
    제가 일면식은 없지만, 동영상을 보면 무심선원의 선원장님은 정말로 많이 가신 분입니다.
    여원님이 이 분에 대하여 폄하하시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여원님의 눈에는 아직 그 분의 경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여원님의 글
    "원정님의 '깨달은 자'를 소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부분을 보면,
    여원님은 여원님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
    원정님께서도 '연기'를 깨달았는데,
    왜 다른 데를 그렇게 기웃거리시니요?
    '연기'보다는 '깨달은 자'의 상태에 대해 더 많이 관심 있는 사람들한테요.

    전 원정님께서
    '깨달음'에 대해 많이 기웃거리시기를 바랍니다.
  • 22-05-11 원정
    여원님은 어디선가 깨달아도 두려움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어요.
    그 두려움 조차 없어지지 못하는 깨달음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반야심경에도 분명히 '무유공포(공포가 없다)'라고 기재되어 있는데요.

    여원님의 살림살이(여원님이 체험하고 있는 공)를 내보여주세요.
    제가 드러내는 것 처럼.....
    그렇지 않으면 항상 뺑뺑이가(쓸데없는 말싸움만) 됩니다.
  • 22-05-11 여원
    '연기'에 대한 깨달음을 잠시동안 떨어져 있어서 그렇지, 원정님께서는 '연기'에 대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미 다된 것인데도 깨닫는 순간을 방해하는 여러 세력들 땜에 잠시 방황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석가모니의 깨달음도 그렇게 방해꾼들이 난리를 쳤는데 어찌 순탄하겠습니까.
    '연기'의 깨달음으로 귀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나'는 소멸되어 본성과 하나되실 것입니다.
  • 22-05-11 여원
    '연기'를 깨달으면 다 된 것 아닌가요?
    더 뭐를 할 게 있습니까?
    '연기의 그물망'으로 삼라만상을 보고, 그와 연결되어 하나인 나를 보면 나는 삼라만상입니다.
    '검은동자와 흰동자'로 보는 것과 비교도 안됩니다.
    인드라망에서 나는 너와 손잡고 있습니다. 너의 손을 놓으면 나는 없고, 나의 손을 놓으면 너는 없습니다. 그게 '연기'입니다.
  • 22-05-11 여원
    불교 아닌 것은 모르겠습니다.
    불교의 깨달음은 '제법무아(연기)'입니다.
    더 이상 얻을 게 없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개체'에 대한 습기를 다스리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 22-05-11 원정
    여원님은 불교를 말하면서
    '고집멸도'라는 4성제를 외면합니다.
    고통은 집착(분별하는 마음)에서 발생하며, 그 집착(분별하는 마음)이 멸하면 도를 이룬다.
    어찌보면 분별심에서 깨어나는 것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아니 모든 마음공부의 핵심입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을 고통에서 구하고자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공은 체험하지 못하면 추상적인 것입니다.
    분별심에서 깨어나야 공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원님에게는 분별심에서 벗어난 체험이 없어요.

    그리고
    연기를 깨달은 여원님은 개체가 아닌가요?
    여전히 여원님이야 말로 깨달은 자가 존재하는데요.
  • 22-05-11 여원
    여원님은 어디선가 깨달아도 두려움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어요.
    그 두려움 조차 없어지지 못하는 깨달음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반야심경에도 분명히 '무유공포(공포가 없다)'라고 기재되어 있는데요.

    여원님의 살림살이(여원님이 체험하고 있는 공)를 내보여주세요.
    제가 드러내는 것 처럼.....
    그렇지 않으면 항상 뺑뺑이가(쓸데없는 말싸움만) 됩니다.
    ---------------------------------------------------------------------
    석가모니와 편재되어 있는 수많은 부처님들은 24시간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불성을 가진 자들은,
    습기가 발동하면 깨달음으로 다스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가는 거죠.
    1시간
    10시간
    15시간
    부처상태가 늘어갈 것입니다.

    원정님께서는
    이 순간도
    두려움이 없는 자라는 개체를 세웠습니다.

    그 존재를 소멸시키고 나서도
    그 존재가 나타나면
    귀신처럼 보세요.
    너는 있다하면 있고,
    없다하면 없는 존재라고 보세요.
  • 22-05-11 여원
    특정한 개체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한 번 부처가 되면 그 상태가 유지된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개체가 아니고 상태입니다.
    상태는 늘 변합니다.
  • 22-05-11 여원
    여원님은 불교를 말하면서
    '고집멸도'라는 4성제를 외면합니다.
    고통은 집착(분별하는 마음)에서 발생하며, 그 집착(분별하는 마음)이 멸하면 도를 이룬다.
    어찌보면 분별심에서 깨어나는 것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아니 모든 마음공부의 핵심입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을 고통에서 구하고자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공은 체험하지 못하면 추상적인 것입니다.
    분별심에서 깨어나야 공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기를 깨달은 여원님은 개체가 아닌가요?
    여전히 여원님이야 말로 깨달은 자가 존재하는데요.
    ------------------------------------------------
    분별심은 생각에서 나왔고, 생각은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마음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마음이 나온 곳을 깨닫고,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본성은 공입니다.
    마음의 본성은 연기입니다.
    마음의 본성은 무아입니다.
    마음의 본성은 중도입니다.

    연기를 깨달았는데 어찌하여 개체가 있을 수 있습니까?
    원정님?
    연기되어 있는 것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다 살거나 다 죽거나
    다 발생하거나
    다 소멸됩니다.
    그런데 어찌 개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가 저절로 소멸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