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무념과 일행삼매에 대하여
가만히 앉아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서 평온과 고요를 맛본 이들은 이것이 깨달음인 줄 안다. 하지만 무상무념에는 상도 있고 생각도 있다. 다만 상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고, 생각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다.
생각자체가 없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것에 빠지는 것을 무기병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일행삼매에 대해서 가만히 앉아 있어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거나 그 평온한 맛을 보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생각이 안 나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면 이는 법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법상에 집착하여 인위적으로 생각과 상을 없애려고 하는 경향(무기병)에 빠지는 것을 가장 경계할 것으로 여겨왔다. 왜냐하면 그건 무정과 같아서 오히려 도를 아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도 없고 상도 없는 게 아니고 다만 생각이나 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즉 생각과 상이 없는 게 공이 아니라 빠지지 않는 게 공이다.
‘산처럼 살다가고, 물처럼 살다간다’는 말이 있다. 산과 물은 온갖 비바람을 겪는다. 하지만 다 흘러 보낸다. 그러면서 산은 묵묵하게 서서 쉴 뿐이고, 물은 유유히 흐르면서 쉴 뿐이다. 우리의 마음도 멈출 수가 없다. 인위적으로 오가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 산과 물처럼 그저 오는 것을 막지 않고 가는 것을 잡지 않아 걸림이 없게 하는 것이다. 오는 것과 가는 것을 느끼지만 느낌에 끌려 다니지 않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도통이 아니라 마음을 흐르게 하는 것이 도통이다. 도는 통해서 흐르는 것이 그의 속성인 까닭이다.
희로애락 분별을 하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공이 된다거나 대상에 대해 무정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것을 견성이라 여기는 것은 법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인데, 어찌 인위적으로 멈추거나 제거할 수 있겠는가! 다만 끌려가지 않고 흐르게 하며 통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