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뭇잎의 집합이 나뭇잎들이 아니라
나무라고 말하는 사람
꽃의 집합이 꽃들이 아니라
봄이라는 걸 아는 사람
물방울의 집합이 파도이고
파도의 집합이 바다라고 믿는 사람
길의 집합이 길들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걸 발견한 사람
절망의 집합이 절망들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슬픔의 집합이 슬픔들이 아니라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벽의 집합이 벽들이 아니라
감옥임을 깨달은 사람
하지만 문은 벽에 산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날개의 집합이 날개들이 아니라
비상임을 믿는 사람
그리움의 집합이 사랑임을 아는 사람
- 류시화,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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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는 그림을 그리는 여자다. 얼마 전 G의 딸 결혼식이 있었고, G는 뒤풀이 저녁식사에 나를 초대했다.
G의 미술작업실에서 G와 가까운 사람 4명과 나를 합쳐 6명이었다. 그중 K를 잊을 수 없다.
서로를 소개할 때 G는 나를 소개하면서 1인 독립서점을 운영한다고 소개하였다. 그러자 K가 말했다.
“어쩐지 첫인상에서 묵향이 났어요.”
난 깜짝 놀랐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독서를 게을리 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독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건 다독자라는 소리가 아니라 책을 엄청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믿으며 책의 영원불멸을 기원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혹시라도 내가 감옥이나 무인도에 갇히게 되더라도 ‘책’을 공급받을 수만 있다면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를 단박에 알아봐 주는 K를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그날 주제는 개성이 있는 일면식 없는 여섯 사람이 서로의 얘기를 하는 기획(?)이었다. G와 같은 직업을 가진 또 다른 미술샘은 G와 함께 기타와 드럼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사업하는 사람은 자신의 회사에 대해 얘기했다. 중간에 G가 준비한 시를 한 장씩 받아서 돌아가며 낭송하기도 했다. G는 문화와 교양을 추구하는 경향이라서 그런지 초대받은 사람들은 참으로 문화적이었다.
아무 준비 없이 얼떨결에 참석한 나는 어쩌다가 보니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최근 나의 최고 관심사인 정치얘기를 했다. 다른 일행들은 거의 듣는 편이었고, 나만 떠드는 형국이었는데 유일하게 K가 나와 소통했다.
나보다 몇 살 어린 듯한 K는 나와 거의 일치된 관점을 견지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보니 의도하지 않았던 정치얘기가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쯤 되자 다른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너무 그렇게 치우치면 영혼이 피폐해지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으로 있으면 사람이 부정적으로 됩니다.”하면서 걱정을 전했다.
그러나 K가 그런 말들을 맞받아치며 처음 만난 나를 설명했다.
“이 사람이 그리 보여요? 표정을 보세요. 얼마나 순수하고 밝아요.”하면서 활짝 웃었다.
난 순간 K를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K씨, 신기가 있는 것 같아요, 하하하”
그때 진짜로 내심 기뻤다. 말과 행동으로 판단하지 않고, 나의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꿰뚫어 봐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행복했다.
모임이 끝나고 귀가하면서 K와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K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말과 행동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함께 통째로 봐주는 통찰력을 가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