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대한 나의 의견
1. 전체(현존, 깨달음, 부처, 참나, 신, .....)로 산다는 것
나는 어느 시점에서 개체가 완전한 전체로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개체가 완전한 전체로 살게 되면 그 개체는 구심점을 잃고 흩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구심점이 인간에게는 에고일수 있다. 성철스님은 생전에 돈오돈수를 말했지만 나는 성철스님으로부터 에고를 느꼈고, 나는 법정스님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 분의 글에서도 에고를 느꼈다. 깨달았다거나 견성을 했다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에고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물이나 바위 등 무생물에서는 에고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내가 죽으면 내 에고도 사라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개체가 완전한 전체로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이 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법 안에서는 개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연결되어 개체라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독립적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현상 또한 근기에 따라서 현상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나 인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존재가 느끼고 보는 것은 그 존재에 국한된 것이지 다른 존재들과 공유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성철스님에게서 에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성철스님은 열반송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
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치니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에고(개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에고(개체)’로 존재했지만, ‘에고(개체)’만 느끼고, ‘무아(전체)’를 보지 못한다면 “나는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라”이렇게 탄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탄식하지는 않았겠죠. 어차피 언젠가는 자신의 본심은 알 것이라고 믿지만, 그래도 역설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면서 다시 한 번 당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전체)를 가리키면 달(전체)를 봐야지 왜 손가락(에고)을 보고 있나?”
그렇다면 수행이나 명상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얻는 것일까? 인간은 진화를 하면서 생각(전두엽)과 감정(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저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은 것 같다)도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를 한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에는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과 감정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생각과 감정을 제3자적 관점에서 가만히 지켜봄으로써(명상) 그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순간순간 가장 적합한 판단을 할 수 있어 보인다. 명상은 지금 이 순간에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또한 생각과 감정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매우 큰 것으로 보이는데, 명상하는 과정에서 생각과 감정이 끊어지면 내 몸 안에는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 같다. 명상을 할 때 알파파가 나오는데 잠을 잘 때도 알파파가 나온다. 동물들은 왜 잠을 자는지 알 것도 같다. 우리는 명상의 삶을 살면서(전체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더 이상 집착에서 나오는 생각이나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다만, 생각이나 감정에는 죄가 없다.
전체로 산다는 것은 우리를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에고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편으로 보인다.
‘선(禪)’, ‘명상(冥想)’이란 분별심이 사라진 자리에 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자리가 바로 ‘진여(眞如)’의 자리죠.
그 자리는 광명의 자리입니다. 어떠한 ‘에고(개체)’도 방편으로 화하는 빛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조차도 어떤 희미한 빛을 가리켜 ‘에고(개체)’를 본다면 그 자리(진여)는 요원합니다. 나의 에고도 너의 에고도 ‘에고(개체)’일 수 없습니다. 그 자리는.
2. 일체유심조
마음이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여도, 적어도 어떤 마음(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주의 모든 것들의 모습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원하는 것에 마음을 집중하면 그 일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얼마나 갈망하느냐의 문제인 것도 같다. 끌어당김의 법칙, 기복신앙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플라시보효과나 머피의 법칙이 뜻하는 의미도 생각하는 대로 결과가 나온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종교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도 기도를 하면 그 기도의 결과가 이루어졌던 것에 기인하는 것 같다. 인디언 기우제처럼 비가 올 때까지 기도를 하면 그 결과는 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인간의 의지론(비결정론)을 좋아했는데, 살면서 결정론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자라나면서 잠재의식(아뢰아식)에 자연스레 축적된 정보나 습관 등은 살면서 자연스레 풀려나오게 되어 있다. 내 잠재의식에 어떤 것들이 숨어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지 아니하면 나는 내 잠재의식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내 삶은 결정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내 잠재의식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면(잠재의식에서 풀려나오는 내 생각이나 습관이나 감정을 순간순간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그 잠재의식에 숨어있는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어 보인다. 잠재의식에 있는 내 생각과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즉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이 것이 부활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나 습관을, 진정으로 원하는 생각이나 감정을 잠재의식에 자연스레 입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이 우주는 에너지 장인 것 같다. 모든 물질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 같다. 그 중량에 따라서 주고 받는 힘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내 마음도 에너지이다. 그러니 내 마음은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체(연기)’를 깨달았다면, 마음 또한 ‘에고(개체)’의 마음이 아니라 전체의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식(識)’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주의 원리부터 원자 나아가 현재까지 밝혀진 초끈까지 알아야 합니다. 식물을 알아야 하고, 미생물과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도 알아야죠. 이러한 자세가 진정한 자세입니다.
그 모든 게 다 나이기 때문입니다.
즉자적 존재, 대자적 존재로 왔다갔다 해서는 계속하여 다람쥐쳇바퀴입니다.
3. 결론
명상을 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지혜롭게 살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에너지가 충만된 삶을 살수도 있다.
또한, 원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마음에 새기면(잠재의식에 입력하면) 그 결과는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21.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