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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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나도 우울증에 빠지는 순간이 가끔 있다.
그럴 때면 내심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우울한 것을 경험하는 것에 대한 기쁨도 맛본다.
우울한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는 계기라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모든 게 역설적인지 모르겠다.
오래된 고택 사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휴식시간을 틈타 뒤뜰에 가서 풀과 벌레들을 관찰하는 일이었다.
거기는 하나의 경이로운 우주였다.
한낮 햇빛이 환희처럼 비춰진 뜰에는 개미가 줄지어 먹이를 날랐다. 이름도 모를 화려하고 큰 거미는 엄청난 공간을 점령해 포복하고, 그것도 모르는 이름 모를 벌레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거미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볼 때마다 달라져 있는 풀들과 흙의 빛깔들은 분명 저들 방식으로 변화를 쉼 없이 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오래 된 은행나무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늘어서서 그늘을 드리우면 담쟁이식물들이 나무들을 기어올랐다.
(나중에 그 은행나무들은 나이 많은 상사가 집 안에 너무 큰 나무가 있으면 안 좋다고 제거했다. 그 사람이 오기 전에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는데 한 사람의 신념은 기어이 오래된 나무를 그냥 두고 보지 못했다. 난 은행나무 밑에서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공간을 마련한 거미를 위해 그리고 바닥에 깔린 무수한 이끼들을 위해 결사반대했다. 물론 왜 반대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고, 그렇게 말했다 해도 은행나무를 구해주는 데 힘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은행나무를 죽이던 날, 난 마음이 아파 얼굴을 돌리고 자리를 피했지만 은행나무의 껍질이 벗겨지고 알 수 없는 기름을 부은 흔적은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은행나무는 거의 반년이상을 버티다가 서서히 목숨을 마감했다.)
가끔 우울증이 예고 없이 찾아올 때면 나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경이로운 그 공간을 떠올린다. 환한 햇살과 함께 근심걱정 없이 순수하기만 했던 벌레들과 풀과 나무들 그리고 환희에 찬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관찰자를 기억해낸다. 이유 없이 제거되던 은행나무를 위해 아파했던 마음도 떠올린다.
순수하고 경이롭기만 했던 관찰자의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내내 우울한 순간의 방어기제가 되어 준다.
오늘아침 만나기 힘든 이누이트족의 시를 읽는다. 시인덕분이다.
아마도 시를 읽었던 순간들이 시인에겐 든든한 방어기제가 되어 줄 것을 안다.
어디 시인뿐인가. 우리 모두는 시와 노래들에 빚지는 존재들이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순간들에겐 기댈 곳이 필요하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시인은 “인생이 정말로 경이로 가득 차 있는지 이누이트족의 노래를 따라 불러 볼 시간이다” 라고 말한다.
나도 경이로운 관찰자였던 나를 불러내고 그때의 환희를 기억해 내야겠다. 무디어가는 감성과 매사에 무관심한 태도를 걷어내기 위해서다.
아침의 시_45
새벽이 밝아 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겨울에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아니오, 나는 신발과 바닥창에 쓸 가죽을 구하느라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어쩌다 우리 모두 사용할 만큼 가죽이 넉넉하다 해도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여름에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까
아니오, 나는 순록 가죽과 바닥에 깔 모피를 구하느라
늘 조바심쳤습니다
빙판 위의 고기 잡는 구멍 옆에 서 있을 때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기잡이 구멍 옆에서 기다리며 나는 행복했습니까
아니오, 물고기가 잡히지 않을까 봐
나는 늘 내 약한 낚시 바늘을 염려했습니다
잔칫집에서 춤을 출 때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춤을 춘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했습니까
아니오, 나는 내 노래를 잊어버릴까 봐
늘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내게 말해 주세요
인생이 정말 경이로 가득 차 있는지
그래도 내 가슴은 아직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새벽이 밝아 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 올 때면
-이누이트족 코퍼 지파의 전통적인 노래 (류시화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