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론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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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11 바람 447


제 2 편 제물론(齊物論)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너그럽고 여유 있지만,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매사에 안절부절 갈피를 못 잡는다. 위대한 말은 담담하나, 하찮은 말은 수다스럽다. 잠이 들면 혼백이 꿈을 꾸고, 깨어나면 육신이 활동을 시작한다. 외계의 사물과 접촉하여 교섭함으로써 마음은 날마다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마음이 바쁜 사람도 있고, 우울한 사람도 있고, 답답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작은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흠칫 놀라게 하나, 큰 두려움은 오히려 망연자실케 한다. 사람들이 시비를 가릴 때에는 마치 쇠뇌의 줄을 튕기듯 재빠르게 행동한다. 그들이 자기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할 때에는 마치 신에게 맹세하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들이 날로 약해질 때에는 가을과 겨울에 초목이 시들듯 쇠잔해진다. 그들이 늙고 퇴락하게 되는 것은 욕망에 억눌리어 앞뒤로 꽉 막히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에 가까와진 사람의 마음은 다시 소생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희노애락과 근심, 걱정, 변덕, 두려움 및 경박함, 방탕, 자만, 허세는 악기의 텅 빈 공간에서 음악이 나오고 땅 기운이 응집해 버섯이 돋아나듯, 밤낮으로 번갈아 가며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그러한 감정의 변화가 싹트게 되는 까닭은 알지 못한다.

두어라! 아침저녁으로 이런 변화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것이 말미암게 되는 바가 있어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들이 없으면 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요, 내가 없으면 그것들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되, 무엇이 그렇게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을 다스리는 참된 주재자가 있을 법도 하지만, 그 모습은 볼 수가 없다. 그 작용은 믿을 만하나, 그 형체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곧 어떤 실체는 존재하되, 그 형체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이란 그저 소리를 내는 것만은 아니다. 말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하거늘, 그 의미하는 바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는다면, 그 말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이 새 울음소리와 다르다고는 하나, 도대체 거기에는 구별이 있는 것일까, 구별이 없는 것일까?

도는 본래 상대적인 진실이나 허위와는 무관하게 독립된 것인데, 도대체 무엇에 가리워져 진실과 허위라는 분별이 있게 되는 것일까? 말은 또 무엇에 가리워져 옳고 그름이 있게 도는 것일까? 도라는 것은 아무 데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말이란 존재한들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도는 작은 성취에 숨기어져 있으며, 말은 화려한 수식 속에 가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와 묵가의 시비가 일게 되어, 상대방이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고, 상대방이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명석한 지혜로써 해야 할 것이다.

긍정이 있으면 부정이 있고 부정이 있으면 긍정이 있게 된다. 그래서 성인은 그건 것에 의거하지 않고, 자연의 본성을 관조할 뿐이다. 곧 자연의 도리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석한 지혜로 사물을 관조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신이 하나됨을 추구하려 애쓰되, 그것이 본래부터 하나임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일러 조삼모사라 하거늘, 그렇다면 조삼모사란 무엇인가?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그 먹이로 도토리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면 어떻겠느냐?" 그 말에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그러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마."라고 말하니까,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 명분이나 실제 내용은 달라진 게 없는데도 기뻐하고 화를 내게 된 것 역시 그와 같은 주관적인 심리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시비의 논쟁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의 균형 속에 여유 있게 머무는데, 그것을 일러 양행 이라고 한다.

내가 자네와 논쟁을 했다고 가정해보세. 자네가 이기고 내가 자네에게 이기지 못했다면, 자네가 옳고 내가 옳지 못한 것일까?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내게 졌다면, 내가 옳고 자네가 옳지 못한 것일까? 어느 한 쪽이 옳고, 다른 한 쪽은 그른 것일까? 우리가 둘 다 옳거나, 둘 다 그른 것일까? 그런 것은 나나 자네나 알 수 없는 것이네. 무릇 모든 사람들이란 나름대로의 편견을 가지고 있거늘, 우리가 누구를 불러다 그것을 판단케 하겠나? 만약 자네와 의견이 같은 사람더러 판단해 보라고 하면, 그는 이미 자네와 의견이 같은데,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나?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판단해 달라고 한들,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나나 자네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판단해 달라고 한들, 나나 자네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판단해 달라고 한들 어찌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나? 그러니 나나 자네, 그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가 알 수가 없는 것이지. 그런데 누구에게 의지하겠나?

옛날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자신이 장주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잠에서 깨어나니, 자신은 엄연히 장주였다.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분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일러 물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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