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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세게/ 도솔천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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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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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천에서 만납시다 중 '극락세계'
시방국토 극락세계 그리운 나라
지척에서 멀리 찾은 마음의 고향
아미타불 계시와서 법을 펴시니
나의 법신 되찾아서 가오리다.
나는 죽어서 극락세계에 간다?
'나는 죽어서 극락세계에 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거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 나의 극락세계는 내 나름대로, 내분수대로 꾸며지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세상에 육신을 받아도 여러분의 분수대로 받고, 여러분의 노력대로 집을 갖고 자녀를 두어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아미타불처럼 48가지 원(願)을 세워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간다 해도 모습을 여의지 않고서는 못 갑니다. 모습을 두고서는 몇백만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습을 딱 여의면 지척간입니다. 이거 아주 과학적이에요. 왜 그렇겠습니까?
비유하자면, 내 머리와 발사이에는 반드시 거리가 있습니다. 머리의 분수로 봐서는 가슴까지도, 허벅다리까지도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습을 떠난 몸 전체를 '나'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거리가 있습니까? 머리도 '나'요, 발도 '나'로서 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머리와 발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요. 바로 여기에 묘미가 있습니다.
지구의 모습과 극락세계의 모습을 두면 한없이 먼데, 지구라는 모습과 극락세계라는 모습을 싹 여의어 버리면 생각하는 딱 그 자리입니다. 모습인 머리와 발 사이엔 거리가 있지만, '나'와는 머리든 발이든 거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모습을 여의면 '허공으로서의 나'입니다. 이 허공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는 거리가 성립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마음을 나투면 달이든 북두칠성이든 그대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허공으로서의 여러분'이라면 극락세계가 천년만년 간들 여러분의 가슴속에 있는 겁니다.
아미타불이 세운 극락세계도 여러분의 가이없는 허공법신 속에 있습니다. 지옥도 허공 속에 있습니다. 숱한 지옥과 숱한 극락세계가 여러분의 법신 속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습만 딱 여의어버리면 그 자리에서 극락세계에 마음을 나툴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색신에 사로잡힌 '나'가 간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겁니다.
불보살이 가는 길을 밟지 말라
나는 불보살이 가는 길을 아예 밟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불보살도 각자 스스로의 살림살이가 있고, 각자 얼굴도 다 다른 차별상의 상대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 역시 부처입니다. 미혹한 부처이거든요. 우리는 모든 부처를 끌어안을 수 있는 우리입니다. 이걸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비록 가죽껍데기를 뒤집어 쓰고는 있지만, 이 가죽껍데기는 무정물이니 나중에 흙구덩이나 불구덩이로 보내집니다. 그럼 진짜 나는 누구인가요?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가이없는 허공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허공의 주인공이고 누리의 주인공입니다.
이건 관념이 아니라 절대 과학적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가죽주머니에 자꾸 쏠리기 때문에 허공 같은 법신을 이 육신 안에서 억누르고 있어요. 그러니 죄가 많은 겁니다. 이 부처를 죽이고 있으니까요.
지옥에 가고 싶어요.
여러분, 지옥에 우리 공부하는 사람이 가지 않으면 누가 갈 겁니까? 바라는 대로 될 수 있다면, 미혹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을 전부 극락으로 보내고 우리는 지옥에 가고 싶어요. 왜 그럴까요? 공부하는 사람이 지옥에 가면 지옥에 연꽃이 피는 법이라서 그래요. 이건 지옥의 성품과 극락의 성품이 둘 아닌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옥을 싫어하고 극락을 좋아한다면 싫어함과 좋아함이란 두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니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두 가지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허공이 하난데 어찌 이런 두 가지 마음이 용납이 되겠습니까? 지옥엔 안 가겠다 하고 극락엔 가겠다고 하는 두 마음에 몰두하고 있는데, 극락에 가게 되나요? 어림도 없습니다.
누가 지옥에 가게 하는가?
아무튼 여러분은 당당한 누리의 주인공으로서 극락을 가는 것도 여러분이 지어서 가는 것이고 지옥을 가는 것도 여러분이 지어서 가는 것이지,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뱀이나 개미 같은 축생도 전부 자신이 만들어서 탈을 뒤집어쓰는 거예요.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슬퍼할 따름이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이러하면 그 탈을 벗느니라' 하고 가르쳐줘도 벗을 줄을 몰라요. 이거 딱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뱀이나 고양이 같은 축생을 그 탈을 쓰면 그 탈이 그렇게 좋은 겁니다. 자기 몸에 집착해서 버리려고 하질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슬기가 있기 때문에 영생을 도모하기 때문에 이 몸을 방하착(放下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몸을 방하착한다고 해서 어디 내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 몸을 소중하게 쓰다가 인연이 다하면 불구덩이나 흙구덩이로 보내버리고,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인연의 과(果)로 다른 생애를 누립니다. 그러나 부처님 정도가 되면 어디든 마음대로 나툽니다.
소소영령한 자리
그러하니 극락세계는 법신이 가는 것이지 색신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색신은 묘지나 화장터로 갑니다. 법신이 가려면, 여러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꿈속에만 빠져 있으면, 숨을 거둘 때 법신 자리로 돌아간다 해도 법신이 희미해집니다. 희미하기 때문에 분수가 없다면 바로 옆에 극락세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못 갑니다. 여러분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모른다면 그만치 법신이 희미한 겁니다. 희미한 법신이 어떻게 극락세계에 갈 수 있겠습니까? 꿈을 깨지 못하면 법신은 아직 못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법신을 보겠나요? 예를 들면, 예전에 마조대사가 백장게게 할을 하니, 백장은 사흘 동안 귀가 먹었습니다. 이 '마조 대 백장'의 자리는 티끌 하나 없는 자리입니다. 참으로 소소영령한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조의 할에 그만 삼천대천세계가 무너지는 형국이에요. 만약 마조의 마음에 티끌 하나라도 가리어져 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 소리만 크다고 해서 사흘간 귀가 먹을 리는 만무하니까요. 마조의 할을 백장이 들었기 때문에 사흘 동안 귀가 먹은 겁니다. 또 임제 선사가 황벽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세번 물었는데, 세번 다 얻어맞았습니다. 이런 경계는 우리가 말로 해서 그렇지 참으로 무서운 경계입니다. 바로 이러한 고비를 넘어야 하는 겁니다. 이 고비를 넘기지 않고 어떻게 대도에 들어갈 수 있나요? 물론 육조처럼 금방 들어간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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