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해충과의 전쟁은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살충제도 해충박멸에 성공하지 못했다. 인류는 유전자 조작 곡물을 통해 해충과의 전쟁을 영원히 끝낼 수 있을까? 유전자 기술을 통해 농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물음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미시건주립대학의 곤충학자인 마크 훼일런은 미국 화학학회 전국 회의에서 색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유전자 조작 곡물이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현재의 해충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피난처 제공 전략’(refugia strategy)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왜 박멸해야 할 대상인 해충을 보호하는 것이 해충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과연 인류는 해충을 박멸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인류가 수렵채취생활에 막을 내리고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래 약 1만년 동안 곡물을 해치는 해충들과 인간들 사이의 전쟁은 한시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사실 인류의 생활양식과 해충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집약적인 경작방식 자체가 해충들에게 집단적인 먹이를 제공하면서 개체군의 증가를 가능하게 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간과 해충은 서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끝없는 숨바꼭질을 벌였고, 수많은 살충제가 개발되었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해충 퇴치방식은 생물공학의 성과를 응용한 유전자 조작 곡물이다.
한 생물의 유전자를 떼어내서 다른 생물의 유전자에 결합시키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이미 1970년대 초에 개발되었다. 이 기술은 1953년에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것과 필적할 만한 일대 사건으로 간주되곤 한다. 전혀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조합해서 새로운 생물을 만드는 것은 오랜 동안 신의 영역에 속했던 생명 창조에 인간이 개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이 기술을 처음 개발했던 폴 버그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생태계를 비롯해서 사회에 끼치는 포괄적인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게 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연구를 중단하자는 이른바 ‘모라토리엄’을 제안하기도 했다. 유전자 재조합은 지금까지의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유전자를 혼합한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유전자 재조합 연구는 계속되었고, 처음 실용화를 이룬 분야가 농작물이었다.
유전자 조작의 원리는 곡물의 유전자에 미생물을 비롯한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삽입해서 원래 곡물에는 없는 새로운 특성을 발현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지난 98년에 우리나라에서 유전자 조작 두부 소동을 일으켰던 장본인인 제초제 내성 유전자 조작콩의 경우,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미생물의 유전자를 곡물에 결합시켜서 아무리 강력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다. 따라서 농부들은 초강력 제초제를 살포해서 콩을 제외한 모든 식물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잡초를 뽑거나 여러 번 제초제를 뿌리는 번거로움을 덜었다. 해충을 퇴치하는 유전자 조작 곡물은 특정 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에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독성물질을 발생하는 유전적 장치를 작물에 삽입한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조작된 작물은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도 해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문제는 생태계의 모든 생물들 사이의 관계가 그렇듯이 인간과 해충 사이의 싸움도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해충을 막기 위해 정교한 장벽을 치면 해충도 그 장벽을 넘기 위한 무기나 장비를 개발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간과 해충 사이의 끝없는 ‘군비확장경쟁’인 셈이다. 지금까지 350여종이 넘는 살충제가 개발되었지만, 곤충들은 이런 살충제에 저항성이 있는 500여 종류의 절지동물들을 진화시켰다. 물론 이 수치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해충의 접근을 막는 독성물질을 스스로 발생시키는 유전자 조작 곡물이라는 장벽도 언젠가는 해충에 의해 극복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훼일런 박사는 저항성을 가진 해충들이 발생해서 널리 퍼지기 전에 현재 살아 있는 해충의 유전적 계통을 보존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유전자 조작 곡물이 현재의 빠르기로 보급되면 해충들은 그에 대한 저항성을 기를 수밖에 없는 진화적 압력을 받게 되고, 저항성을 가진 해충들이 생존에 더 유리해진다. 사람의 개입이 본의 아니게 더 강력한 해충을 발생시키는 이른바 인위선택을 작동시키는 셈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저항성이 없는 해충들을 일정 정도 유지시켜서, 그 유전 계통이 사라지지 않고 해충들에게 계속 이어지도록 관리하는 이른바 ‘피난처 제공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끝없는 군비확장경쟁을 그만두려면…
사진/ 유전자 조작 작물은 아무리 강력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다. 사진은 유전자 조작 옥수수. 훼일런 박사는 “우리는 흔히 과학이 해충의 저항을 해결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사실 우리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말한다. 해충의 피해를 막기 위해 해충을 보호해야 한다는 얄궂은 결론인 셈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생태적 관점에서 해충의 박멸이 아니라 해충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미국 환경보호국은 유전자 조작 곡물 확산에 따른 환경적 피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로 이 방법의 채택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식물과 곤충은 인류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경쟁과 공생이라는 복잡한 진화적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인류가 여기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며, 아직 우리는 인간의 개입이 어느 정도까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해충을 박멸의 대상이라고 보는 관점이 옳지 않으며, 인간과 해충과의 전쟁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kwahak@byulno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