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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책임의 대부분은 미국에 있다"/프레시안0

03-07-29 원정 906
다음은 미국의 저명한 한반도전문가 브루스 커밍스 교수(시카고대)와 김민웅 박사(재미언론인)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커밍스 교수는 이 인터뷰에서 1994년 제네바합의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던 북핵
문제가 제2 핵위기로 재연된 책임의 대부분은 개인적 증오감으로 대북적대정책을 펼치고 있는 부시행정부측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을
평화로운 동네 놀이터를 난장판으로 만든 심술쟁이 꼬마에 비유했다.






부르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 ⓒ프레시안

그는 그러나 90년대 말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연합 등이
추진했던 대북포용정책의 모멘텀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는 2004년에 부시 대통령이 물러난다면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커밍스 교수는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역할에 대해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가 제한돼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대선 당시 미국과의 독립적이고 평등한 관계 설정을 주장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이후 이같은 주장을
실천에 옮기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실망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보다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6일 오후 연세대에서 45분간 진행됐다. 편집자


제2 북핵 위기, 책임의 대부분은 미국에 있다

김민웅 : 우선 지금의 이른바 "북핵 위기"의 본질, 어떻게 봐야 하는가? <북핵 위기>라는 말은 사실상 한반도의 위기상황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게만 묻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실상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보다 본질적인 원인을 구성하고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북한의 핵 문제는 미국의 세계전략상 마치 불가결한 요소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인상이다.

커밍스 : 질문 내용 중 일부는 아주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항상 북한을 비난해 왔다. 다른 나라를 비난하는 것보다 북한을 비난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북한 지지자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 북한은 미국을 추종하지 않고 있다. 미사일방어망(MD)과 같은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MD는 중국의 미사일을 무력화시킨다는 목적도 갖고 있다. 하지만 (MD 추진을 위해) 중국의 위협을 내세우기보다는 북한의 위협을 내세우는 편이 훨씬 편리하다. 오랫동안 북한은 그런 역할을 담당해 왔다.

두 번째로, 북핵 위기는 사실상 이미 10년 전에 해결됐었다. 1994년의 제네바합의가 그것이다. 이 합의에 따라 북한은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영변 흑연감속로의 가동을 중지했고 2002년 12월까지 상황은 안정돼(settled) 있었다. 왜 북한이 2002년 12월 또 다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느냐 하는 문제의 원인은, 2002년 9월 (잠재적 적대국가에 대한 핵선제 공격을 명시한)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이 발표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직후인 10월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평양에는 미국의 새로운 안보전략에 따라 북한이 미국에게 공격당할 수 있다는 매우 깊은 우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제임스 켈리는 북한이 우라늄농축을 이용한 핵개발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떤 종류의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거의 유일한 외부 소식통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재개에 대한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은 채, 오로지 제임스 켈리의 일방적 주장 하나만을 빌미로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거부했다.

미국의 독립적 전문가들과, 내가 알기로는 미 중앙정보국(CIA)도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상황에 도달하려면 수년이 걸릴 것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이는(북한의 핵개발 재개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제임스 켈리와 부시행정부는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북한과의 어떠한 관계 진전도 봉쇄하는 구실로 이용했다. 따라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북핵 위기를 초래한 책임의 대부분은 부시행정부측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 북한은 아직도 1994년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본다. 북한의 핵시설은 아직도 대부분 동결상태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 위기가 재발한 것은 매우 불행한 사태의 반전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자신의 보좌관들은 물론, 다른 그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김민웅 : 지금 이야기했던 상황을 종합해보자면, 북한의 핵무기개발이란 '자기 방어용'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미국에 대한 의도적 도발행위로 규정한다. 북한의 핵 동작이 갖는 전략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해석하는 일은, 한반도 위기를 둘러싼 해법의 선택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커밍스 : 두 가지 모두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자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나 도발적인 성명들을 발표해 왔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바는, 2002년 9월 이후 북한이 핵개발 재개에 나선 핵심적인 이유는 믿을 만한 억지력(reliable deterrent)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그들 입장에 볼 때는 자위조치이다. 핵무기를 가진 적국의 전쟁 도발을 막을 수 있는 억지책은 독자적인 핵무기 보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기로 결정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따라서 아직 협상의 여지는 있으며 이를 통한 한반도의 비핵화는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은 스스로 핵 보유를 원한다기보다는 그런 상황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북한의 핵 보유를 막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

김민웅 : 만약 북한이 핵무기가 아닌,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준비 프로그램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전쟁 도발용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제한은 있으나 일단 전쟁억제용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포기하게 하는 데에는 설득력에 한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철회라는 전제가 성립할 때 가능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커밍스 : 맞는 말이다. 북한이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을 남한이 막을 수는 없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는 미국이다. 자신의 체제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무기를 만드는 것을 제지할 수 없다. 이는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윌리엄 페리 대사,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저명한 인사들이 북한과 미국 간의 직접대화방식을 꾸준히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내 한반도전문가ㆍ의회 온건파ㆍ국무부, 대북 직접대화 지지

김민웅 : 그런 의미에서 부시 행정부 내에서 이와 같은 직접 대화 방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부시 행정부 밖에서 그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사들은 또한 얼마나 되는가?

커밍스 : 부시 행정부 밖의 경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전문적 연구를 해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그러한 입장에 있다. 이들은 직접대화를 하지 않고 있는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 일부는 북한이 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무기개발 문제와 관련하여 응징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마저 여전히 미국은 북한과 직접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내부에서 국무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직접대화방식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무부의 중간(mid-level) 간부들도 그렇고, 가령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도 의회 청문회에서 부시행정부의 직접대화를 주장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사실이 다음날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부시는 격노했다고 한다.

윌리암 페리는 지난 주 미국이 북한과 직접대화를 하지 않은 가장 주된 이유로 부시가 김정일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민웅 : 아니, 그런 개인적 감정으로 이러한 문제를 사고한단 말인가?

커밍스 : 그렇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개인적인 감정, 적대감 등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만나보지도 않고 그렇게 김정일에 대해서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공화당측 전문가의 조언조차 무시하는 부시행정부

김민웅 : 클린턴 행정부의 경우, 저명한 북한관계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경청을 했다면 부시 행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이들 전문가들이 부시 행정부 내에 대화 통로가 막힌 것은 아닌가?

커밍스 : 실로, 부시행정부는 윌리암 페리와 같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신 말대로 지금까지 부시행정부는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언급했던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도날드 그레그는 현 부시 대통령 아버지인 전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 보좌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2001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간의 한미정상회담이 재앙으로 끝난 직후, 그레그는 아버지 부시의 편지와 함께 한반도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부시에게 보냈다. 이것은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어느 인사도 그레그에게 전화 한 통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 그레그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다. 부시행정부는 같은 공화당원인 도널드 그레그의 말조차 듣지 않는 형편이다. 그러나 북핵을 둘러싼 위기가 좀더 심화되어 실질적인 위기, 실질적인 대결 상태가 벌어지게 되면 부시행정부는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런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리라 생각된다.

김민웅 : 의회의 경우는 어떤가? 그곳에서도 윌리암 페리라든가 도날드 그레그와 같이 외교적 접근을 중요시하는 입장을 취하는 인물들이 있는가?

커밍스 : 의회에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관점들이 존재한다. 상원의 경우, 전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조셉 바이든 상원의원은 부시행정부의 북한과의 직접대화 쪽에 호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공화당 의원이자 바이든과 같은 외교위원회 소속인 리처드 루가는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지지할 뿐 아니라 북핵 문제에 대한 경제적 보상 차원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공화당 군사문제 위원회의 맹장이었던 샘 넌과 함께 이른바 <넌-루가 의안>을 주도한 사람이다. 이 안은 구소련의 핵무기를 해체하는 대가로 20억 달러를 카자흐스탄에 지불한다는 방안이었다. 루가는 이 안과 비슷한 것을 북한문제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무튼 이렇게 민주, 공화당 내부의 온건파들 사이에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직접 대화 방식이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김민웅 :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듯한 리버만은 어떤가? 리버만이 중동문제에 대해 취한 입장은 잘 알고 있다.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하여 부시 지지를 표명했는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의견은 아직 잘 알려진 바 없지 않은가?

커밍스 : 나도 사실 잘 모른다. 내 생각으로는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쨌건간에, 리버만은 최근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는 4위나 5위 정도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입장이 한반도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그리 중요해지리라고 보지 않는다. 또 사실, 리버만이 그리 중요한 정치적 지위에 있기를 나 자신 바라지 않는다. (웃음)

김민웅 : 백악관을 비롯, 국무부, 국방부 등 부시 행정부 내에서 북한 관련 발언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스럽게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유력 언론의 경우에도 사실 매우 혼란스러운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의도를 감춘 음모인가? 미국의 대외정책 추진을 위한, 언론을 통한 프로파간다인가? 아니면 사실상의 혼란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하는가?

커밍스 : 그것은 사실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다. 10년 전 나는 <전쟁과 TV>라는 책을 쓴 바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걸프전, 베트남전쟁, 한국전쟁을 보기로 들었는데, 전쟁과 관련하여 어떻게 신문과 기타 언론매체를 읽고 이해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씨름했다.

뉴욕타임스는 '기록의 신문(paper of record)'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신문이다. 누구든 자신의 중요한 성명이나 뉴스들이 뉴욕타임스에 실리길 원한다. 데이빗 생거라는 기자가 있는데, 그는 미국의 정보당국이 흘리는 정보를 기사화하는 통로(an outlet)이다. 최근 한 달 동안 그는 정보당국이 흘린 정보를 바탕으로 2~3건의 기사를 썼는데 그 중 하나는 북한이 고폭실험(재래식 폭탄을 이용하여 핵폭발을 유도)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에서 밝힌 내용은 사실상 수년 전에 나온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한국의 정보기관은 이러한 이야기를 계속 해왔던 바가 있다. 그러나 아무도 북한이 핵무기폭발장치를 제작했는지 또는 실제로 핵폭탄을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한 6,7년 지나면 난데없이 뉴욕타임스 1면에 특종처럼 실리곤 하는 일이다. 이런 걸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사실 나로서도 황당하다.

김민웅 : 이러한 언론 보도의 뒤에 도대체 뭐가 있는 것일까?

커밍스 :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면에는, (행정부 내) 사람들이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 위해 뉴욕타임스 등에 경쟁적으로 정보를 흘리고 있다.

김민웅 : 그러니까 다만 언론의 문제로만 압축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기관의 문제도 있다는 이야기라고 이해된다.

커밍스 : 그렇다. 그렇게 해서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 자신의 입장이 보다 강력한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이라크 전쟁 이전이나 이후 에도 계속 벌어졌다. 정보기관의 사람들은 이쪽은 이런 이야기를, 저쪽은 저런 이야기를 흘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굴러가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사실, 북한 내부에서 무슨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김민웅 : 그렇다면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진정 믿을 만한 정보나 사실들을 발견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닌가. 최근 뉴욕타임스는 북한 내 또 다른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핵시설 2~3개가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는데 예상과는 달리 부시 대통령은 그러한 보도에 대해서 그게 뭐 별거냐 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일들, 어떻게 봐야 할까?

미국 내 신뢰할 만한 북한전문가는 5명 정도

커밍스 : 바로 그러한 기사들이 아까 언급했던 경우에 꼭 맞는 좋은 예이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 내용은, 미국 첩보기가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만들 때 발생하는) 크립톤 85 가스를 감지한 것은 북한이 폐 핵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며 크립톤 85가 생성된 곳에 대한 정보 분석 결과 이 가스가 영변 핵시설이 아닌 산악지대 비밀공장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인터넷에 들어가 이 문제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봤는데, 이에 대한 미국 내 최고의 독립적 전문가인 데이빗 올브라이트는 만일 북한이 기사대로 여러 지역으로 핵재처리시설을 분산시켰다면, 예를 들어 5개 시설에서 소규모로 폐연료봉을 재처리했다면 크립톤 85 가스를 감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공기 중에도 크립톤 85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상 징후를 발견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사는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올브라이트는 북한은 단일한 대규모 우라늄농축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올브라이트는 북한이 분산된 소규모 시설에서 우라늄농축을 하고 있다면 이를 찾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지난 12~13년 동안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으나, 핵물리학자가 아닌 상황에서 이에 대하여 제대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2억 8천만 미국 전체 인구 가운데, 아마도 5명 정도나 그보다 한두 명 더 추가할 수 있을까 말까, 북핵문제에 대해 신뢰할 만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빗 올브라이트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외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으며, 다음 정권에서 뭘 해보려는 사람도 아니다. 리온 시걸, 셀리그 해리슨, 그리고 이외에도 여러 명 정도와 전직 관료로서 윌리암 페리 같은 경우에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자, 북핵문제의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대부분의 미국언론들 중 일부는 민주당의원들의 관점을 기사화하고 다른 쪽에서는 공화당의원들의 주장을 기사화하고 있다. 자신들은 그 내용이 실질적으로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이들은 이렇게 각자 자신의 정치적 경향에 따른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미국에서는 북한문제와 관련한 그 어떤 제대로 된 논쟁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문제에 그 밑바닥까지 내려가 정확한 정보와 내용을 알자면 아마도 유능한 스파이가 되어야 할지도 모를 판이다.

다른 한 가지 주시할 만한 일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이 대단히 유능하게 핵문제를 세간의 관심사로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서 북한은 자신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농축 우라늄 개발을 하고 있다고 여기게 하거나 해서 자신들의 협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김민웅 :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커밍스 : 그런 셈이다. 10년 전 CIA는 북한이 하나나 둘 정도의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 북한을 도와준 꼴이 됐다. 북한은 자신의 핵무기 보유나 핵 실험을 선언한 바 없지만 이같은 발표로 인해 그러한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CIA의 발표는 북한의 협상과 관련한 입지를 높여준 셈이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은 사실상 없다"

김민웅 : 북핵 문제와 관련한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보도는 다른 한편으로는 부시행정부내의 강-온파의 대립, 경쟁의 반영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국무부, 국방부간의 갈등, 온건파 강경파의 대립 등등의 틀 말이다.

커밍스 : 그건 절대적으로 옳은 관찰이다. 상원의원 조셉 바이든은 대북해법과 관련한 부시행정부내의 분열은 산안드레아스 지진대(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는 거대한 단층대)와도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데이빗 생거는 6개월 전 뉴욕타임스를 통해 부시행정부의 주요 각료들이 북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모인 자리에서 10 가지 이상의 다른 의견이 나왔지만 전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왜 이렇게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가? 이건 결국 부시 대통령이 일관된 대외정책 결정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사실상 미국의 대북 정책은 없는 셈이다.

김민웅 :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시 대통령 자신은 누군가에게 깊이 의존하지 않겠는가?

커밍스 : 체니 부통령은 1주일에 한 번씩 부시와 함께 사적인 점심식사를 한다.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부시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콜린 파월은 부시와 만나려면 사전에 약속을 요청해야 한다. 럼스펠드와 체니는 지난 2년 동안 부시의 머리 속을 자신들의 생각들로 꽉 채우면서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쳐왔던 것이다.

김민웅 : 그렇다면 부시행정부에서 파월이 힘이 약하다는 것은 사실인가?



커밍스 : 파월의 힘은 사실상 부시 행정부 밖에서 나온다. 그는 대단히 인기가 높은 인물이고 또 흑인이라서 흑인유권자들을 의식하고 있는 부시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그는 부시행정부내에서 체니나 럼스펠드만큼의 영향력은 없다.

김민웅 : 그런 상황에서 파월이 개인적인 좌절감을 토로하는 경우를 들어보았는가?

커밍스 : 공개적으로 그런 적은 없던 것 같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전의 시기를 보면, 당시 부시 행정부 내에서 대단히 첨예한 논쟁들이 벌어졌었다. 파월 국무장관은 부시의 정책에 대한 동의를 얻기 위해 유엔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라크 침략에 대하여 찬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 파월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에 동의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보면, 파월은 총체적으로 평가해볼 때 <모범적인 군인>이 아닌가 싶다. 파월은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일단 부시의 입장이 정리가 되면 그 결론에 따른다.

미 국무부는 부시행정부의 '외적', 파월 장관은 국무부측 파견대사

김민웅 : 파월의 경우, 아까 이야기했던 부시 행정부 밖의 북한 전문가들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가?

커밍스 : 파월은 국무부 간부들의 얘기들을 경청한다. 남들의 이야기를 잘 존중하는 편으로 그는 국무부 안에서 인기가 높다. 그러나 국무부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거의 "외적(foreign enemy)"으로 간주되고 있을 정도이다. 지난 주의 한 기사를 참조하면 파월은 "부시행정부에 파견된 국무부의 대사"라는 내용이 나온다.

김민웅 : 그건 정말 믿기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커밍스 : 이건 진실이다. 국무부의 몇몇 명망 높은 인물들이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침략 정책에 반대해 이미 사임했다. 내 친구인 국무부 중견 간부는 국무부의 직원들과 파월간의 문제는 없다고 내게 말해줬다. 그들은 매들린 올브라이트보다 파월을 더 좋아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파월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점이고 혹 듣는다면 일부 현안에 대해서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이다.

중국은 미 대북공격의 최대 장애물

김민웅 : 중국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이번 북핵 사태에서 중국의 역할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움직임을 어떻게 봐야 하나.

커밍스 : 부시 행정부는 출범 때부터 중국을 주적으로 삼고 싶어 했다. 2001년 미국 정찰기가 하이난섬에 비상착륙했을 때를 기억할 것이다. 엄청난 위기로 치달을 뻔 했는데 아버지 부시가 개입해 이 상황을 해결했다. 그 사건은 부시 행정부 내에 중국을 바라보는 상이한 시각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은 중국을 미국의 거대한 적으로 보는 우익 매파들이다. 다른 한편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이들은 중국과의 거래에서 돈을 버는 데 관심이 있고, 따라서 중국과의 좋은 관계를 원한다. 그 두 세력간에는 매우 심각한 갈등이 있어왔다고 여겨진다.

9.11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 두 집단간의 갈등은 더 악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 이후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는 테러리스트들의 정보를 미국에게 가장 많이 제공해줬고 중국 스스로도 서부지역에 있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토벌작전을 벌였다. 이에 부시 행정부는 중국이 테러리즘과의 전쟁에 대해 상당히 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는 새로 들어선 후진타오 체제를 기분 나쁘게 자극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후진타오가 장쩌민보다 미국에 훨씬 호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미국은 가급적 중국에 대해서 시비를 걸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현재 미중관계는 매우 좋은 관계에 있다. 부시행정부 출범 당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다. 중국은 북미 대화를 이끄는 데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중국은 부시가 북한을 공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대북 공격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필요하다면 북한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자신의 무력을 동원, 개입할 것이라는 위협을 할 수도 있다. 중국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같은 위협은 분명히 할 수 있다.

클린턴은 1994년 핵 위기 때 영변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습을 계획함으로써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공격 한 달 전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려 했던 미국의 계획은 중국의 거부로 무산됐다. 동시에 중국은 최 광 당시 북한군 총참모장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고 많은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그를 반갑게 껴안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중국이 방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였다. 북핵문제에 대한 걱정으로 잠들기 어려웠던 상태에서 내가 그나마 안도하면서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중국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부시 행정부가 한국의 목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한국으로부터는 듣고 싶은 말만 들을 것이다.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말만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중국은 부시 행정부의 앞날을 꼬이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김민웅 :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 문제에 중국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 같다. 거기에는 어떤 숨어 있는 동기가 있다고 보는가. 테러리즘 문제에 있어 미국은 중국의 협력을 높이 사고 있지만 동북아 정책에서 중국은 당신 말대로 미국의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당한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커밍스 :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모두 북미 직접 대화와 포용정책을 지지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다자대화를 요구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을 압박해 미국의 그 같은 정책을 지지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와 중국은 공식. 비공식으로 자주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미국에 대해서 북한과 직접대화를 비롯하여, 북한의 안전 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조차 몰랐던 럼스펠드

김민웅 : 말하자면,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입장에 대해서 조건부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가?

커밍스 : 미국에게만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조건부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합리적인 것이다. 리영희 교수의 말처럼,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던 것처럼 미국도 오래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뤘어야 했다. 북미간의 비정상적 관계는 58년이나 됐다.

중국은 무력 사용이 전제된 미국의 대북정책은 따르지 않을 것이지만 부시 행정부는 중국의 지지를 원하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약 6주전 미국과 중국이 합작해 북한 정부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침에 신문에서 그 기사를 보고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럼스펠드가 중국과 한반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두 사람의 증인에게서 들은 바 있는데, 2001년 국방장관이 된 럼스펠드는 미국이 한국에 아직도 3만7천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럼스펠드는 결코 만만찮은 사람이고 매우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상대에게 상당히 잘 전달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중국이나 일본, 한국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못하다. 그것이 큰 문제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국은 1980년대 초부터, 그러니까 20년 전 이미 북미 관계 정상화에 노력해왔다.

김민웅 : 중국과 북한 사이에 '균열'이 있다고 보는가?.

커밍스 : 물론 그렇다. 두 나라 사이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난 후에 그렇다. 김일성은 중국에 많은 친구와 오랜 기간동안의 동지가 있었고 중국은 그의 리더십을 신뢰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그처럼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이런저런 엉뚱한(erratic) 행동을 많이 했는데, 가령 김정일이 양빈을 신의주 경제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한 다음날 중국이 그를 잡아가둔 일은 김정일을 가장 크게 당혹스럽게 만든 사건이었다.

김민웅 : 그 사건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가? 중국이 나름대로 경제발전을 추구하려는 북한을 경쟁대상으로 보고 통제하기 위한 의도적인 일이었나, 아니면 실제로 양빈이라는 인물에 대한 사법적 문제가 있기에 당연히 취한 태도로 봐야 하는가?

커밍스 : 경제특구를 추진하기 전에 중국과 분명히 상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중국과 맞닿은 곳에 또 하나의 홍콩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북한은 중국에 이를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따라서 양빈 체포는 김정일에 대한 매우 강력한 비난의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다이빙궈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4시간동안 만난 바 있는데 이는 양국 관계를 위해 좋은 징조였다. 그는 돌아와서는 파월 국무장관과 두 시간 반 동안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파월과 다이빙궈의 대화가 북한과 미국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사실 대단히 긴 것인데, 중국이 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사실 매우 나쁘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에 원조를 계속하고 있고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

김민웅 : 이른바 "전쟁의 정치(politics of war)"에 대해 이야기 좀 해보자. 미국과 북한이 정전협정에 서명했을 때는 전쟁이 끝난 줄로 알았고, 모두가 환호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지난 50여년간 정전협정이 지속되는 동안에 준전시상태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사실 당시 우리로서는 '전쟁의 정치'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이었고, 지금도 이러한 상황은 여전하다고 본다. 당신의 책 <한국전쟁의 기원>은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전쟁의 정치"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커밍스 : 전쟁의 정치에 대해서 누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 책의 경우, 전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나 그 이후의 결론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당시 예상은 1년 내에 아주 중요한 평화회담이 열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또 아이젠하워가 언급했듯이 평화협정체결에 따라 미군이 철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또한 외부로부터 신형 무기가 도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이었지만, 적어도 아이젠하워 행정부와 케네디 행정부는 모두 주한미군 철수를 원했다. 실제로 닉슨은 1개 사단 병력을 철수시켰다. 카터 대통령은 전면 철수를 원했다. 정전협정 후 25년 동안 미국은 조만간 미군이 철수될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고 주둔 미군들이 하루 속히 본국으로 귀환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상황이 변했다. 동북아에서 소련의 힘이 없어지고 중국과 일본이 거의 동시에 강국으로 떠올랐다. 미 국방부는 미군이 영원히 혹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한국에 머물러야 한다고 결정했다. 1995년 나이(Nye) 보고서에서는 15년 이상, 즉 최소한 2020년 이후까지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8년 윌리엄 코언 당시 국방장관은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여전히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소련이 없어지면서 미국은 중국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이 중국과 일본을 봉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게 된 것이었다.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와 한국인들이 또 한번 희생된 것이다. 정전협정이 조인되던 1953년, 한반도가 2003년까지 분단돼 있고 3만7천명의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면에서 이는 예상되지 않은, 기대되지 않은 결과였다.

전세계에 걸친 미군 주둔, 역사의 진전 가로막아

김민웅 : 역사학자로서 베르사이유 체제 등 수많은 종류의 평화체제를 검토해 보았을 것이다. 유엔이란 기구 자체가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체제가 무너지고 파산하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전협정체제는 평화를 확보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했던 반면에, 지난 50년의 세월동안 우리를 전쟁의 상황에 더욱 깊게 끌어들이는 모순된 기능도 가지게 된 것 같다. 정전협정의 역설이다. 한반도의 평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정전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어떤 사람은 정전협정체제의 존재 때문에 우리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정전체제 때문에 전쟁에 준하는 위험한 조건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커밍스 : 전쟁 억제 체제(system of deterrence)가 또 한번의 한국전쟁을 막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특히 북한은 50년 동안의 투쟁으로 불구 국가가 됐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국가다. 남한에도 분단 체제가 들어섰고 수십년간의 군부독재를 겪으면서 공안기관의 힘만 비대해졌다. 분단은 남북한 양측의 집권 세력의 힘을 강화시켜주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미국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은, 이전의 전쟁들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강화조약이 맺어지고 군대가 즉각 철수된 반면, 2차대전 후에는 미군이 세계 각지에 그대로 주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차대전이 끝난 후 국제연맹이나 베르사유 평화협정 같은 평화체제를 구축됐다. 그러나 군대가 본국으로 돌아오면 그들은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의 전쟁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어떤 전쟁이었건, 미국이 이겼든 졌든 혹은 비겼든, 베트남전을 제외하고는 미군이 철수한 적이 없다. 2차대전에서 패배한 일본과 독일에는 각각 4만 5천만과 수십만의 미군이 아직까지 주둔해 있다. 따라서 독일과 일본은 반(半)주권국가(semi-sovereign powers)의 상태로 남아 있다. 미군이 없었다면 그들이 가졌어만 할 군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국전쟁이 교착상태로 끝난 후 미군은 철수하지 않았다. 베트남전은 패배로 끝났지만 만일 그전의 오랜 기간동안 그랬던 것처럼 교착상태가 계속됐다면 그 지역에는 아직도 미군이 주둔해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분단 상태가 계속됐더라면 말이다. 우리는 걸프전쟁에 승리했다. 그러나 승리의 결과는 중동지역에 더 많은 미군기지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현재 1만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후에는 미군기지가 중앙아시아에도 생겨났다.

분명한 것은 미국은 현재 세계경찰의 노릇을 하고 있으며, 또한 전세계를 병영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해외 주둔 미군이 모두 철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일본은 군국주의화하고, 독일은 나치 국가가 되며, 북한이 남한을 점령하든가 혹은 그 반대의 사태가 벌어질까. (웃음) 따라서 역사의 감각(sense of history)은 2차대전 이후 전혀 진전되지 않고 정체돼 있다. 전세계에 걸친 미군의 주둔이 이 같은 (역사의) 정체를 초래한 것이다. 그것은 세계사적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전례없는 상황이다. 세계 최강의 군대와 최대의 경제를 자랑하는 나라가 2. 3위 경제대국들의 영토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궁극적으로 강대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구소련 지역의 영토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러시아에는 없지만 그루지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나라에 미군기지가 있다. 우리는 지금 구 소련의 영토까지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2차대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결코 군국주의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군대는 매우 작았고, 군대는 미국의 삶 속에서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군대는 미국사회와 역사 속에서 정말이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게 됐다.

남한,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문제

김민웅 : 한반도는 바로 그러한 군사적 초대강국 앞에 서있다. 그래서 때로 매우 좌절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위기가 다가오지만 분단과 분열은 계속되고 외교적인 역량에는 한계가 있으며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는 사문화되었거나 사문화되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한반도의 상황에 어떤 제안을 할 수 있겠는가.

커밍스 : 나는 대한민국의 외교적 선택지가 그토록 제한돼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미군이 철수할 경우의 불확실한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수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국 방어에 미군의 지상병력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근해에 핵잠수함이나 항공모함을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지상병력도 공군기지도 필요 없다. 주한 미군은 한국문제에 개입하고 있으며, 한반도 분단과 군사적 대결에 대해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왜곡된 견해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보다 평등하고 독립적인 한미관계를 원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기대를 걸었다. 그것은 부시 행정부에 엄청난 압박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아직까지 그를 실천하지 않고 있다. 실망스러운 일이다.




제네바합의, 아직 소생가능성 있다

또한 나는 1990년대 말에 한반도상황에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와 햇볕정책, 미사일 협상,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과 조명록 차수의 교차방문이 있던 평화 메커니즘을 만드는 협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매우 행복한 시절이었다.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통일을 30년쯤 후로 연기했다는 점에서 매우 영리한 정책이었다.이로 인해 북한은 숨 쉴 상당한 여유와 함께 남한이 자신들을 흡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도 지지했다. 따라서 나는 아직도 그 당시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90년대 말에는 정전협정을 실질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4자회담도 열렸다. 그것은 매우 진취적이었고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런 상황에서 부시가 불량배(bull in a china shop)처럼 나타나 도자기 가게의 접시들을 모조리 깨뜨렸다.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이 벽돌로 열심히 만들고 있는 멋진 성을 무너뜨리는 심술쟁이 같았다. (웃음) 이건 정말이지 사실이다. 그동안 일어난 일에 대한 정확한 비유다.

김민웅 : 도대체 이 심술쟁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커밍스 : 부시는 자신이 어질러 놓은 것을 원상복구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부시가 패배한다면, 새 미국 대통령은 매우 손쉽게 과거의 모든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이후부터 중국과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더 나아가서는 일본과 유럽연합, 푸틴 러시아 대통령까지 북한과의 협상을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유럽연합은 북한의 미사일 유예조치를 얻어냈고 푸틴 대통령도 김정일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대통령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협상에 참여하도록 꾸준히 노력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1년이 넘게 남아있고 새 대통령이 들어선다면 그간 4년간의 단절이 있게 되는 것이지만, 1990년대 말의 포용정책은 여전히 강력한 제안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21세기에도 계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과연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고 내가 말한 모든 상황이 벌어지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부시 대통령이 낙선할 것인지 알 수 없다. 누군가가 그를 가르쳐야 하는데... 현재 이라크 점령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 미군이 매일 죽어나가는 이라크의 상황이 그에게 교훈이 됐으면 한다.

김민웅 : 끝으로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다. 당신은 누구를 스승(mentor)으로 삼고 있는가. 누가 당신의 학문세계를 형성케 했는가.

커밍스 : 베트남전쟁 중에 대학원에 들어갔다. 강의실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강의실 밖에서 매일 벌어졌던 반전시위와 당시 여러 가지로 혼란한 정국도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사실 특별히 누구를 스승으로 생각지는 않는데 그 같은 상황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던 점이 운이 좋았다고 여겨진다. 캠퍼스 안팎에서 벌어지는 시위에서 많은 것을 배웠던 1980년대 한국 대학의 상황과 닮았었다. 그런 상황으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대학 캠퍼스 안과 밖에서 무슨 일이 벌이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는 스승은 없었지만 당시 노암 촘스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1960년대 지식인의 횃불 같은 존재였다. 역사가로서는 윌리엄 애플만 윌리엄스, 월터 르페브르, 로이 가드너 등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김민웅 : 이미 1920년에 미국 역사에 대하여 비판적 논의를 전개했던 스콧 니어링에게도 영감을 얻었나.

커밍스 : 한국 전쟁에 대한 연구를 하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러나 1950년 7월 내놓은 한국전쟁에 대한 분석은 그 어떤 것보다도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60년대 말 사람들의 뇌리에서는 사라져가는 인물이었다. ("한국전쟁비사"를 쓴) I. F. 스톤도 꼽을 수 있겠다. 그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당대의 정치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역사가들을 언제나 존경해왔다. 윌리엄 애플만 윌리암스와 월터 르페브르, 로이 가드너 등은 분명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단지 그들의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그토록 훌륭한 책을 썼는지, 그리고 나 자신은 어떻게 해야 그런 좋은 책을 쓸 수 있는지 분석하면서 읽는다.

김민웅 : 그렇다. 바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쁜 시간 긴 대담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출처 : 프레시안

게재일자 : 2003-07-29 오후 5:4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