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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결정한 전쟁이라도..역사가 용서할 것"/불레어0

03-07-28 원정 862
"잘못 결정한 전쟁이라도..역사가 용서할 것"
<분석> ‘역사’는 명분없는 전쟁을 한 블레어와 부시를 용서할 것인가?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지용민 기자



지난 1월 28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의회에서 역사적인 ‘연두교서(Union Address)'를 낭독했다. 여기서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9·11테러' 이후 테러의 위협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몇몇 나라를 선정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적극적인 <예방전쟁>에 나설 것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이란, 북한 이 세 나라가 부시에 의해 '악의 축'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두 달 뒤, 미-영 연합군은 UN의 존재를 무시한 채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5월 1일 전투기 조종사 복장을 한 부시는 에이브러험 링컨호 함상에서 ‘전쟁 승리’를 공식으로 선언했다.

커져만 가는 의혹, 명분있는 전쟁이었나?

그러나 미-영 연합군은 왜 이라크를 침공했던 것일까?

이라크에 민주적 과도정부가 구성되는 시점에 때늦은 질문인 듯 들리는 이 물음은 최근 미국에서 대유행하고 있다. 전쟁의 명분이 없었다는 것이 연일 화제인 가운데 이라크 전쟁을 결정한 부시와 블레어에 대한 각 국민들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에 <신뢰에 대한 의문(A Question of Trust)>라는 기사를 게재하며 이라크 전쟁명분을 부시에게 물었다.

타임은 부시가 연두교서에서 전쟁의 명분으로 제기했던 “The British government has learned that Saddam Hussein recently sought significant quantities of uranium from Africa(사담 후세인은 최근 아프리카에서 핵무기의 재료가 되는 엄청난 분량의 우라늄을 구매하려 했다고 영국정부가 밝혔다)”를 일컬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문제의 16단어’라고 보도했다.

‘16단어의 진실게임’은 지난 6일 우라늄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미 국무부가 아프리카의 니제르로 파견했던 조지프 윌슨 조사관이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기고문을 보내 “이라크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정보가 이라크의 위협을 과장하기 위해 미-영 정부에 의해 왜곡됐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고 실토하면서 촉발됐다.

전직 대사출신인 윌슨 조사관의 ‘전쟁을 위해 미국이 정보를 조작했다’는 폭로는 세계에 일대 파란을 안겨줬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했던 미-영 연합군이 그나마 자국민들로부터 커다란 지지를 얻으며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이라크가 ‘9.11 테러’의 배후세력인 알-카에다를 지원했다. 즉, 테러지원국이다.
2. 이라크에는 ‘WMD(Weapons of Mass Destruction)-대량살상무기'가 숨겨져 있다.
3.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 중에 있다.

그러나 위 명분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밝혀진 바 없다는 데 부시와 블레어의 고민이 있다. 대량살상무기는 고사하고 이라크 전역을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무기공장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고, 미국을 대표해 조사했던 조사관의 폭로에 의해 ‘이라크가 핵무기를 만들려 한다’는 주장도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알-카에다와의 연계설도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 하나 없다.

윌슨 조사관의 폭로가 나온 이후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는 보름 동안 9%가 떨어져 현재 50%를 간신히 넘고 있는 상태다.

‘역사의 용서’ 구하는 블레어

‘16단어의 진실게임’이 진행 중인 가운데 17일(현지시간)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이 미국을 방문해 상·하원을 상대로 의회연설을 진행했다. 영국 총리가 미국 상·하원 합동의회에서 연설하기는 역대 4번째이며 마거릿 대처 수상 이후 18년만이다. 역대 클레멘트 아틀리,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수상이 블레어에 앞서 미 합동의회에서 연설했다.

뿐만 아니라 블레어 수상은 윈스턴 처칠 전 수상에 이어 두 번째로 미 의회가 수여하는 의회 골드메달을 수여했다. 미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환대를 받은 셈이다.

이런 환대 속에서 블레어는 “우리가 실수로 저지른 전쟁이었다 할지라도 역사는 우리를 용서할 것”이라고 말하는 기염(?)을 토했다. 블레어 수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라크 전쟁이 우리가 잘못 결정한 전쟁이라고 해도, 우리는 비인간적 학살과 고통을 야기할 위협을 제거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 용서해줄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믿습니다.(If we are wrong, we will have destroyed a threat, at its least, is responsible for inhuman carnage and suffering. That is something I am confident history will forgive) 그러나 만일 우리의 비판자들이 틀렸다면, 즉 제 모든 영감으로 확신하고 있는 우리의 옳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면 역사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박수)”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이날 연설의 백미는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는다 해도 역사는 자신을 용서해줄 것’이라고 블레어가 강조한 대목”이라면서 이날 32분 동안 진행된 연설에서 블레어 수상은 미 의원들로부터 19차례의 갈채를 받았다고 연설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영국의 BBC 방송도 블레어가 17차례나 기립박수를 받는 인상적인 연설을 했지만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대량살상무기에서 찾던 종래의 모습과는 차이 나는 연설이었다고 보도했다. BBC는 지난 5월말부터 블레어 수상이 이라크 전쟁을 개시하기 위해 이라크의 군사적 위협을 과장해 발표했다는 의혹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영국언론들은 전쟁 명분에 대한 말 바꾸기뿐만 아니라 블레어의 친미적 발언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가디언은 ‘블레어 수상이 미국을 자유의 수호자라고 미화했다’고 보도했고 BBC는 ‘그는 영국은 미국과 함께 할 것이며 자유를 위한 미국의 싸움에 동참할 것’임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상상만으로 끔찍한 대치, <이라크 국민> →

AP통신은 지난 6월 11일자 보도에서 3월20일부터 4월20일까지 이라크의 124개 병원 중 60개의 기록만을 근거로 이라크 ‘민간인’ 3240여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전 지역의 병원을 조사한다면 민간인 사망자수는 배로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에 투입된 미-영 연합군의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250명을 넘어섰고 이라크의 게릴라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1991년 걸프전 당시의 미군 희생자 382명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제 사회의 동의도 생략한 채 엄청난 인명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전개했던 이라크 전쟁이 종전 2달째를 맞으면서 ‘날조된 정보’에서 명분을 찾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영 지도자들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블레어의 합동의회 연설이 끝난 뒤 공화당의 에드워드 마키(매사추세츠) 하원의원은 “전쟁 개시 명령이 내려질 당시 양국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많은 진실을 감춰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 역시 부시 대통령에게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하고 나선 상태다.

이와 같은 공세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블레어의 연설 뒤 가진 합동기자회견에서 “나는 아직도 이라크 대량 학살무기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라크 전쟁을 결정한 선택은 전적으로 옳은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 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부시는 "아직 무기들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미-영 양국 지도자들이 확신에 차 전개했던 이라크 전쟁이 점차 명분없는 전쟁으로 밝혀짐에 따라 세계는 이들의 정책 결정과정을 의심스런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라크 국민에게 민주적인 정부를 세워줄 것이라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민주정부를 세울 것입니다. 우리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그들의 석유자원을 부패한 관료들이 아닌 이라크 국민들의 번영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으며 그 약속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 국민들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까지 그들을 도와줄 것입니다. - 블레어 합동의회 연설에서”

위 연설에서 <이라크 국민>을 <북한 주민>으로 대치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한 일이다. 특히, 최근 고조되고 있는 '북핵위기'를 고려할 땐 한다면 상상조차도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중국과 러시아 등 지정학적 위치가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억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며 평화적인 해결을 기대하는 낙관적 견해도 존재하지만 증거를 조작하고 감만으로 전쟁을 벌인, 그러면서도 ‘역사’를 운운하는 초강대국 정상들을 보면서 그네들의 국익에 먼저 눈길이 쏠리게 된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몫’이라는 구절이 이라크 전쟁을 통해 반복되고 있다.

2003/07/19 오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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