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자키에서는 어제부터 3일간 ‘대한민국 정체성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특집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이번 특집을 통해서 최근 정체성 논란의 현상과 본질, 그 실체에 대한 보다 정확한 분석을 통해 이런 현상들이 지금 이 시기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 그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는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나아가 분단 체제의 정체성을 넘어 통일 한반도의 정체성은 어떻게 확립해 갈 것인지를 고민해 보는 논의의 장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오늘은 <한성대학교 한완상 총장>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발언으로 시작된 국가 정체성 논란이 보름이 넘도록 정치권의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고, 한나라당에서는 헌법 정통성 수호 특별기구라는 것을 만들어서 당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하는데요.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들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한완상 총장“이번 공방은 NLL 침범 사건, 의문사위의 활동 등을 계기로 촉발됐는데, 이 몇 가지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지금까지 우리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시켰던 냉전 체제의 유지라는 입장에서 제기됐다는 사실입니다. 국가 정체성 공방의 본질은 역사적으로 조명해봐야 됩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지배 세력은 최근에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굉장히 불안해진 겁니다. YS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 사람들은 탄탄대로를 걸어왔습니다. 일제 시대를 거쳐 분단 시대에 들어서면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문민 반공 시대-이승만 시대, 군사 반공 시대-박정희 시대까지 흔들림 없이 지배 세력으로 군림했거든요. 그러면서 분단이 고착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국민들로부터 저항을 받게 되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서 국가 정체성의 기본이 되는 민주공화주의 혹은 주권 재민 사상, 인권 존중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훼손시켜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권력을 강권으로 유지해왔거든요. 그러다가 문민정부 들어서고 제동이 걸리면서부터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문민정부는 그들을 일정하게 포섭했죠. 그런데 DJ가 정권을 잡으니까 더 불안해졌죠. 그러나 DJ도 그들을 일정하게 포섭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씨의 당선은 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이 사람들은 그 충격을 받으면서도 역사의 흐름은 생각하지 않고, 과거 자기들의 권력 기반이 됐던 냉전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복원하고 싶은 생각에서 대통령의 언어 스타일에서부터 국가 정체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시비를 걸고 공격해 왔죠. 그 공격의 총체적인 모습이 탄핵 정국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탄핵 정국도 새로운 역사를 추동해 나가는 디지털 세력, 네티즌들이 뒤집어놨단 말이에요. 그렇게 패배하고 나서 굉장히 아프니까 박근혜 대표가 정말 겸손하게 차떼기와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것에 대해서 석고대죄 하는 심정으로 사과함으로써 그 위기가 잠시 연기된 겁니다. 그런데 참패할 듯 하던 총선에서 100석 이상을 얻을 정도로 힘을 얻게 되니까 다시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순전히 냉전 체제 재생산의 입장에서 국가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내걸었어요. 간첩이 어떻게 장군을 심문하느냐고 했는데, 간첩으로 지목됐던 의문사위 조사관은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의 국회 진술 등을 통해 조작으로 밝혀진 사건의 피해자라는 보도를 봤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을 계속 저지르고 있는 거죠.이런 것을 볼 때 국민들은 냉전을 넘어선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꾸 옛날을 재생산 하려는 심정에서 정체성 논쟁이 나왔다고 보는 거죠.”언제 유신체제가 이 땅의 민주세력들에게 검증받았나◎ 사회/정범구 박사-이번에 통과된 친일진상규명법과도 관련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논란 또 정체성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기된 박근혜 대표의 유신 책임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완상 총장“박근혜 대표가 다 무너져가는 야당을 확고하게 살려놨는데, 박 대표가 앞으로 정말 야당을 활성화시켜서 차기 집권세력으로 키우고자 한다면 두 가지 장애를 넘어야 합니다. 첫째는 박 대통령의 18년간의 치적을 보다 냉엄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줄 아는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18년 동안 박정희 정권이 국민들에게 좋게 한 점도 있습니다.그러나 무려 18년간 너무나 억울하고 부당하게 고통당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역사관이나 인식이 새로운 21세기의 역사 흐름과 통하는 점이 많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박근혜 대표는 차떼기 정당의 잘못을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면서 추진했던 탄핵을 사과했던 것처럼 그런 수준의 정중하고, 겸손하고, 진솔한 사과를 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아버지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로 하여금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인간의 기본권,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것에 대해서, 또 그 고통을 지금까지 느끼고 있는 국민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사과하면서 털고 넘어가는 것이 하나의 장애를 극복하는 일이구요. 또 하나는 반세기 동안 제도, 관행, 의식, 문화 속에 깊이 드리워진 냉전 체제를 청산하고, 지금의 노무현 정권보다도 더 과감하게 남북관계를 촉진시켜서 한반도를 평화와 번영의 중심축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선다면 박 대표의개인적 정치적 미래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사가 밝아지겠죠. 이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데 이번 정체성 문제는 산을 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더 높은 장벽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박근혜 대표가 어떻게 감히 헌법 수호 운운하나◎ 사회/정범구 박사-한편에서는 청와대와 여당이 과거사 문제를 ‘박근혜 때리기’에 동원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완상 총장“그렇다면 박근혜씨가 대표로 있는 그 당 안에서 이재오 의원 등이 정수 장학회가 확실히 잘못됐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시켰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만약 박 대표가 여당과 청와대에서 자신을 죽이기 위한 차원에서 그런 문제를 제기했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를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사실 국가 정체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되면 피해를 받는 쪽은 여당이 아닌 야당일 수 있고, 특히 박근혜 대표가 상처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아버지의 일제 시대의 경력, 해방 직후의 경력, 억압 정치 등 일련의 사건들을 각 부분별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국민들에게 알리는 과정을 밟는다면 박근혜 대표는 엄청난 값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정범구 박사-박근혜 대표의 유신 책임론이 제기 되자, 박 대표는 유신체제는 충분히 검증을 받았다며 이제는 오히려 참여정부가 검증받아야 할 때라고 반격을 하고 나왔는데요. 이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완상 총장“이것은 아주 보편적인 진리와도 같은 이야기인데요.한 정권에 대한 검증은 그 정권의 공권력에 의해서 부당하게 피해를 받은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일제 시대의 검증을 친일파가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치 정권의 만행을 나치 당원이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즉 유신 체제는 유신 체제에서 구체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정치적 고통을 받은 사람들만이 검증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유신 체제가 이 땅의 민주세력들에게 검증을 받았습니까? 유신 체제를 복원하고 싶어 하는 일부 언론 등이 조장한 여론에 의해서 검증받았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참여 정부가 진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노무현 후보는 처음부터 이회창 대세론에 의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어려운 국면이었습니다. 이 대세론을 당당하게 꺾어낼 수 있도록 한 힘은 노무현 후보가 속해있던 정당의 힘이 아니라 네티즌의 힘이었습니다. 또 탄핵 정국을 이겨낸 힘도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21세기 새로운 주권을 가장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네티즌의 힘이었단 말이죠. 이런 과정을 보면 이미 그 사람들이 검증을 해 준 겁니다. 검증을 했기에 열세에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열세에 몰린 대통령이 지금 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건 국민이 해준 겁니다. 국민에 의해서 정당하게 선출된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검증해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반국민적이고 반시대적인 발상이죠.”바람직한 국가 정체성은 통합된 민족의 국가 정체성◎ 사회/정범구 박사-한편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나 여당은 한나라당의 정체성 공세에 대해서 새로운 색깔론으로 맞받아치고 있는데요. 이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완상 총장“국가 정체성 공방이 촉발된 계기가 된 몇 가지 사건들이 전부 다 색깔론과 쉽게 연결되는, 냉전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볼 수 있죠. 오히려 국가 정체성 이야기를 하려면 헌법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합니다. 헌법의 정신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확고하게 하는 것입니다.헌법 1조 1항은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이고, 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부터는 대체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국가가 나옵니다. 기본권에도 자유권적 기본권과 생존권적 기본권이 있습니다. 자유권적 기본권을 보호해주는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이고 생존권적 기본권을 보장해 주는 국가는 복지 국가죠. 즉 헌법의 기본 정신이 민주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과연 국가 정체성 문제를 들고 나온 일부 냉전 수구 세력들이 이런 헌법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는 세력 가운데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지난 반세기 동안 이것을 훼손하는 일에 앞장섰던 세력에서 나온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조명을 한다면 박근혜 대표가 어떻게 감히 국가 정체성 문제를 끄집어 낼 수 있고, 헌법 수호를 운운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회/정범구 박사-대한민국의 정체성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좋겠습니까?◑한완상 총장“남북이 분단된 이 시점에서 남쪽에서라도 국가 권력이 인간의 기본권이 신장되는 방향으로 행사되는 상황이 오면 국가 정체성 논쟁은 안 생길 겁니다. 삼국시대 이후 천 년 동안 유지해왔던 단일 민족 국가의 전통,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는 민족은 하나인데, 국가는 아주 적대적인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지 않습니까?그러니까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 보다 바람직한 국가 정체성은 통합된 민족의 국가 정체성일 겁니다. 이 문제는 불가불 평화 통일 문제와 연관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이 국가 정체성이 냉전 체제의 유지를 바라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나왔다고 가정한다면 분단이 고착되어야만 그들의 소망이 이뤄질 것 아닙니까.그러면 바람직한 미래 지향적인 통합된 민족의 국가, ''One Nation''의 꿈은 이뤄지기 힘든 것이죠. 그러니까 이 문제는 정말 이 시점에서 아주 절박하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입니다.이 시점이 어떤 시점입니까? 부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북이 악의 축으로 지목되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상당히 고조된 시점이거든요. 악의 축이라는 규정이 살아있는 한 한반도의 전쟁위험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죠.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분단은 위태로운 상황에서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한반도의 전쟁만은 막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통일은 10~20년 후에 온다고 하더라도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온갖 종류의 교류 협력은 강화시켜서 사실상의 통일 상태까지가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남북 간의 경제 협력이 구체적인 열매를 맺게 되면 전쟁도 더욱 실효성 있게 방지되고 평화가 뿌리내리게 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됐을 때 우리는 통합된 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로 들어서게 될 겁니다.”◎ 사회/정범구 박사-국가 정체성 논란과 관련해서 지금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대목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한완상 총장“지금 우리 조국의 서쪽을 보면 중국이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0년 후에는 정치 경제 대국으로 벌떡 일어설 겁니다.또 동남쪽을 보면 일본이 10년 후면 군사대국, 정치 대국으로 벌떡 일어설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냉전 유지식의 국가 정체성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우리 민족이 합쳐서 통합된 국가 정체성을 세우는 일에 힘을 모아야 됩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오늘 말씀 감사합니다.▶진행:정범구박사▶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98.1MHz 월~토 오후 7시~9시)(CBS 창사 50주년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