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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슴'을 '말'이라 부르는가/손석춘2

04-04-21 원정 1,005
누가 '사슴'을 '말'이라 부르는가
[손석춘 칼럼] 이라크 파병 논란 '국어 상식'으로 마침표 찍을 때


사슴과 말은 다른 동물이다. 실없다고 실소 머금을 일이 아니다. 보라.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무리들이 오늘 대한민국에 넘치고 있지 않은가.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논란이 그렇다. 새삼 말할 나위 없이 '침략'과 '공격'은 다른 말이다. 느낌부터 그렇지 않은가. '침략'이란 말을 들을 때, 누구나 불의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비단 어감의 차이가 아니다. 아무 국어사전이나 펼쳐 보라. 두 단어의 관계를 명토박아 가른다.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공격'을 침략으로 풀이한다.

결례를 무릅쓰고 감히 묻는다. 오늘 미국 조지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은 침략인가, 공격인가. 둘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사실 보도인가.

기실 해답은 이미 나와있다. 미국의 전쟁 명분, 유일한 정당성은 '이라크 군의 대량살상 무기'였다. 하지만 찾았는가. 아니다. 그래서다. 미국 안에서 부시 비판여론이 일고 있다. 미국 밖에선 반전여론이 시나브로 퍼져간다.

분명히 답하자. 침략이다. 하지만 우리 대다수는 '침략'이라고 말하는데 머뭇거린다. 까닭은 하나다. 미국에게 '침략'이란 말을 쓰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있다.

중국 진시황이 숨졌을 때다. 환관 조고는 거짓 조서로 태자 부소를 죽인다.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웠다. 실권을 잡은 조고는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서슴없이 "말"이라고 불렀다. 어린 황제는 당연히 신하들에게 묻는다. 사슴 아닌가. 신하들의 답이 어땠을까. 미루어 짐작할 일이다. 사슴이라 말한 신하들은 조고에게 모두 죽었다.

내시 조고. 그는 오늘 이 땅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다. 저 '부자신문'들을 보라. 침략을 일러 '공격'이라 부른다. 침략이라 할라치면 서슴없이 색깔을 씌운다. 하지만 냉철할 일이다. 우리 국어사전은 하나다. 진보의 국어사전이 따로 있고, 보수나 수구의 국어사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공격이라 하는 것은 사슴을 말이라 부르는 짓이다.

그까짓 단어놀음이라고 넘기지 말기 바란다. 침략이 정답이라는데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옷깃을 여미며 진지하게 제안한다. 대한민국 헌법을 보라. 제5조 ①항이다.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그렇다. '침략 전쟁'도 아니다.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못박았다. 거듭 강조하지만 명쾌한 문제이다. 마땅히 대한민국은 이라크 침략전쟁을 부인해야 옳다. 그러나 보라. 되레 침략전쟁에 공화국의 젊은이들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정직하자. 국어사전을 들고 가장 부드럽게 말하자. 이라크 침략전쟁에 젊은이들을 보내는 모든 사람들은 헌법을 파괴하는 자들이다. 국가보안사범이다.

이 또렷한 진실 앞에 도리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윤똑똑이들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다. 복잡하단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복잡하기는 저 환관 조고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동의했던 숱한 부라퀴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복잡했겠는가. 부귀영화를 지키려고 사슴을 말이라고 하기까지엔.

우리가 한글을 쓰는 한, 이라크 침략전쟁에 파병은 옳지 않다. 위헌이다. 진보와 보수의 시각 차이가 아니다. 국어만 바르게 쓰면 단숨에 풀릴 문제이다. 당대의 먹물들이 한문을 과시할 때, 주시경은 한글로 다음과 같이 썼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리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에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그렇다. 국어를 사랑하자. 우리말 온전히 쓰자. 침략은 침략이라 부르자. 제국주의는 제국주의로 부르자. 이미 스페인에 이어 온두라스도 병력 철수를 선언했다. 곰비임비 철수하는 그 땅에 왜 대한민국은 군대를 더 보내려는가.

마침 17대 총선은 국회를 바꾸었다. 제3당인 민주노동당은 파병 철회를 당론으로 정했다. 그래서다.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원내대표에게 당부한다. 숱한 '386의원'들에게 촉구한다. 파병을 철회하겠다는 결기를 세워라.

작게는 그것이 정치인 김근태가, 386의원들이 사는 길이다. 크게는 나라를 나라답게 가꾸는 길이다. 총선은 '장난'으로 치른 게 아니다. 더 이상 사슴을 말이라 부르지 말라. 사슴과 말은 다른 동물이다.

2004/04/21 오전 8:23
ⓒ 2004 OhmyNews
  • 04-04-22 바람
    군대를 보내느냐 아니냐는, 우리나라의 이익에서 보는 측면이 아니라, 이라크 국민들의 자주적 평화를 도와주는 측면으로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군대를 보낸다면 그것은 이라크국민들에 의한 자주적평화가 아니라, 힘에 의한 평화가 됨으로서 도리어 본의 아니게 이라크 국민들에게 죄를 짖는 결과가 빚어지게 된다고 봅니다.
  • 04-04-23 마음
    윗글과 바람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저는 부사와 이라크의 문제를 두려움과 믿음의 상실로 보고 이라크파병을 어쩔 수 없는 긍정적 선택이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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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놓으면 덫에 걸리기가 쉽습니다. 율법과 대한민국 헌법도 가끔은 그러한것이라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순수의도가 있다면 정성의 과정이 중요하고 나타나는 결과는 하늘의 뜻이라 여깁니다.